느와르 영화를 생각하면, 맨 먼저 ‘알랑들롱’이 떠오른다. [대부] [스카페이스] [히트]의 알파치노가 대단하고, [히트] [좋은 친구들] [원스어펀어타임 인 아메리카]의 로버트 드니로도 빼놓을 수 없다. 홍콩 느와르는 대부분 별로이지만, [무간도]의 유덕화와 양조위는 좋았다. 그러나 알랑들롱보다는 못하다.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건 [태양은 가득히] [암흑가의 두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내겐 단연 [부메랑]이다. 그리고 [르 갱] [르 지땅] [볼사리노2]이다.
[르 갱]에서 곱슬머리로 냉혹하면서도 천진스런 얼굴로 깔깔거리는 쓸쓸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그가 어린 애인과 침대에서 “넌 화장 얼굴보다 맨 얼굴이 더 예뻐!”라는 짧은 말이 그 분위기에 너무나 어울려서 감동 먹었다. 그녀는 진짜 그랬다. 알랑들롱은 얼굴만 그윽하게 멋진 게 아니다. 그의 불어 목소리도 가히 고혹적이다. 샹송에서 읊조리는 알랑들롱의 매혹적인 음색은 온 몸에 저려 들어온다. 누가 그러데요. 알랑들롱 목소리처럼 말하고 싶어서 불어를 배웠다고.) [르 지땅]에서, 콧수염을 기른 깡마른 얼굴,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는 한 가닥 머리카락과 붉은 스카프자락, 그리고 가녀리게 슬피 흐르는 집시의 바이올린. 깊게 눌러쓴 [볼사리노] 모자에 형형히 내쏘는 눈빛, 뒷골목의 길잃은 검은 고양이를 쓰다듬는 쓸쓸함.
이번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의 깡마른 맵시와 깐깐한 몸놀림이 제법 멋있었지만 설익어서 깊지 못했다. 이병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잘못으로 보였다. 공포영화를 아주 싫어하기에 [조용한 가족]과 [장화홍련]은 일부러 보지 않았고, [반칙왕]은 보려 했으나 놓쳤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 궁금하기도 했고, 궁예로 히트친 김영철의 굵직한 남성미를 항상 좋아했는데, 그가 깡패보스로 나온다기에, 그의 카리스마를 옹골차게 맛보고 싶기도 했다. 실망스럽진 않았지만 기대했던 카리스마를 채워주진 못했다. 황정민의 연기에 대단히 놀랬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부라더스]에서 그의 연기가 참 좋았지만, 영화가 모든 점에서 워낙 훌륭했기에, 그가 유별나게 돋보이지 않았고, [바람난 가족]에서 그가 도드라져 보이지도 않아, 그에게 그리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가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와이키키 ]에서 그의 연기가 새삼 절실하게 다가왔다.
▲ ⓒ달콤한
인생
[달콤한 인생]에서 돋보이는 건, 딱 세
가지. 깔끔하고 선명하게 뽑아낸 화면색감과 팡 뚫리는 총소리에 청명하게 떨어져 구르는 탄피소리 그리고 황정민의 잔인하면서 비열한 연기. 첫 장면
5분쯤은 “앗싸”하게 개운해서 좋았다. 그리고 나머진 참 딱하다. 뒤로 갈수록 축축 늘어지고 늘어져 지리해진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전체에
신경질이 났다. 느와르 영화의 검푸르게 쓸쓸한 비장함을 초쳐 버렸다. 이 한 작품만 보고, 이 감독을 비난하는 게 좀 캥기기도 해서, 이 정도로
그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