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더라도 교사로 태어나고 싶다”하시더니...
“다시 태어나더라도 교사로 태어나고 싶다”하시더니...
  • 김준태
  • 승인 2005.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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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준태(시인.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윤영규 선생님을 멀리 보내면서 올리는 글

   
▲ 추모시를 낭독하는 김준태 시인 ⓒ안형수
언제 어디에서나 늘 그리운 윤영규 선생님!
왜 그리 훌쩍 떠나시고 말았습니까. 하늘은 저리 푸르고 꽃들은 저리 피어나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무슨 바쁜 일이 있으시어 우리들만 뒤에 남기고 멀리 멀리 가고 계십니까. 

강남갔던 제비도 날아오고 언제나 빛고을 광주를 지켜주는 무등산도 저리 푸르러오는데 그 무슨 못잊을 님이 저 하늘에 기다리고 있어 황급히 떠나고  말았습니까. 여기 지상에는 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는 일곱 딸들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원한 벗이요 동지요 아내인 이귀님 여사가 계시온데 그만 저 먼 먼 하늘나라로 떠나가시고 마는 것입니까.

슬픕니다. 울고 싶습니다. 말문도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심정입니다. 살아생전 늘 우리들 속으로 들어와, 아니 그 누구도 선뜻 나서기가 힘들었던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고 앞장을 서서 우리들을 이끌어주셨던 이 나라 교육운동의 큰 어버이신 윤영규 선생님! 험난한 가시밭이나 다름없었던 이 땅 민주화운동과 5.18광주시민항쟁의 지도자요 산증인이신 윤영규 선생님! 

님의 일생은 결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교육운동사에, 세계 어느 나라 민주화운동사에 내놓아도 새벽별처럼 빛나고 있을 그런 모습으로 당신의 일생은 참으로 눈물겹고 아름다웠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늘 그리운 윤영규 선생님! 
그런데 이제 님을 보내고 뒤에 남은 우리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사람은 많아도 지도자가 보기가 힘든다는 세상, 나이든 사람들은 많아도 젊은 사람들에게 '큰 기침‘으로 정신 번쩍 들게 해주는 ‘큰 어른’을 만날 수가 없다고 다들 걱정들을 하는 판국에, 당신마저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으니 오늘 어디에 가서, 누군한테 참 말씀을 구하고 참 행동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여보게들, 사람은 저마다 한 알이 밀알이 되어야 하네. 자신을 썩혀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씨앗을 뿌리게 하는 것이 ‘교사의 길’이라네.” “다시 태어나더라도 교사로 태어나고 싶다” 1980년 5월26일 어둔 새벽녘, ‘죽음의 행진’을 자청하고 광주를 침공한 계엄군들의 탱크 앞으로 다가가 “젊은이들을 더 이상 학살하지 말고 차라리 우리들을 깔아뭉겨라”고 외치시더니...

언제 어디서나 조용조용, 가만가만 말씀하시면서 젊은이들의 뒷등을 다독거려주시던 빛고을 광주 그리고 이 땅의 영원한 스승이여! 

님은 우리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님은 광주와 이 땅의 당당한 파수꾼이었습니다. 빛나는 검은 두 눈동자 그리고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늘 그리운 윤영규 선생님! 아 이제는 금남로에서, 용봉동에서, 지산동에서, 서석동에서, 산수동에서 당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슬픕니다.

 어쩌면 먼 앞날에도 떨리는 두 손으로 우리들을 어루만져 주실 그리운 님, 우리 사랑 윤영규 선생님이시어! 이제는 고요히 두 눈을 감으소서. 평안하소서. 하느님의 품안에서 영생을 누리소서. 참교육의 큰 스승, 한국 민주화와 광주항쟁의 큰 지도자, 자상한 아버지시여. 부디 하늘의 뜻에 임하소서. 
                 
2005년 4월 2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인 김준태 엎드려 경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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