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밀리언 ]에 준 작품상과 감독상을 [레이]에게 주겠다. 그래미상을 12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레이 찰스의 블루스&째즈 가락과 연주가 감겨들어와 안겨드는 귀맛이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그의 인생 스토리 사이사이에 엮어넣는 솜씨가 절묘하고 짜임새 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연출로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낸 작품은 결코 많지 않다. [역도산]이나 [에비에이터]는 감독이 그들의 삶을 멀찌감치 바라보면서 그들의 인생기록을 나열해가는 듯했지만, [레이]의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그의 인생에 함뿍 빠져들어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었다. 나도 저절로 레이 찰스의 인생에 빨려들어 한 몸이 되었다.
만사를
제쳐두고 교육방송이 방영한 ‘7부작 블루스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았다. 블루스에 서린 흑인들의 생생한 삶이 새겨진 질박한 체취가 더욱 짙게
적셔든다. 레이 찰스의 노래가 이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다. [프리다]에서 만났던 챠벨라 바르가스의 노래 만큼이나 전율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요즈음 매끈하게 잘 빠진 노래솜씨보다도, 이런 텁텁하고 굵직한 음색과 투박하게 내지르는 창법에 깊고 깊게 잠긴다. 판소리도 오늘날의 매끈한
재주꾼 소리보다도 옛날 송만갑이나 임방울의 껄껄한 막사발 소리에 더 깊은 귀맛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울 엄니가 못 부르는 듯이 부르는
‘타향살이’와 '호남가'의 맛이 기막히다. 흉내를 내 보지만 영판 다르다. 나를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