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민의미술세상]바위에 새긴 그림
[배종민의미술세상]바위에 새긴 그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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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대 암각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 반구동에는 태화강을 끼고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넓고 잘 다듬어진 절벽 아래, 높이 3m, 너비 10m 정도의 암벽위에는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세 마리의 바다거북을 선두로, 새끼고래를 업은 어미고래, 작살이 박힌 고래, 등에서 물을 뿜는 고래 등 48마리의 고래 떼가 절벽 위를 향해 유영하고 있다. 또한 함정에 빠진 호랑이, 새끼를 밴 사슴, 교미하는 멧돼지, 토끼 한 마리 등 육지동물도 절벽을 뛰어다닌다. 그 사이로 7명의 사람들이 카누처럼 생긴 배를 타고 고래사냥에 나섰고, 가장 꼭대기에는 한 사내가 자기 키 만큼이나 긴 나팔을 남근이 곧추서도록 힘껏 불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반구대의 바위그림을 일컬어 바위동물원, 사냥그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 반구대 암각화 사람 얼굴 탈

이와 같이 바위에 새긴 그림을 암각화(岩刻畵)라고 한다. 즉, 암각화는 ‘바위’라는 대상에 ‘새기다’라는 행위가 결합된 것이다. 그래서 암각화를 ‘바위그림’, ‘암벽화’, ‘바위새긴그림’ 등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새기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다양하다. 돌과 나무 등에 문자나 형상을 조각할 때, ‘묘비에 이름을 새기다’, ‘나무에 얼굴을 새기다’라고 쓴다. 한편, 이 말에는 ‘간직하다’의 의미도 담겨있다.

오래도록 잊지 않고 싶은 추억이나 기억을 간직하고자 할 때 가슴에 새긴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어의 ‘einritzen'[찢다, 새기다] 및 고대 노르웨이어의 ’rita‘[새기다]는 영어의 ‘to write'[쓰다]와 의미가 통한다. 즉, 선사인들이 그림을 새기는 행위는 현대인의 글쓰기와 일맥상통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5개 지역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울산대곡리반구대암각화를 비롯하여, 울산 천전리, 고령 양전동과 안화리, 영천 보성리, 경주 석장동과 상신리, 영일 칠포리, 포항 인비리, 영주 가흥동, 안동 수곡리, 함안 도항리, 남해 양아리, 남원 대곡리, 여수 오림동이  그것이다.

그런데 암각화의 거의 대부분은 하천을 낀 바위에 새겨져 있고, 암각화의 아랫부분에 의식공간이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것은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신성한 장소를 선정해서 암각화를 새겼음을 의미한다.

즉, 선사인들에게 바위를 새기는 행위는 무엇인가를 영원히 간직하고픈 신앙과 같았다. 그것은 승려가 불경을 옮겨 쓰고, 수도사가 성경을 정성스레 베끼는 것과 그 의미가 일맥상통한 것이다.

   
▲ 반구대 암각화의 사냥꾼과 새끼고래를 업은 어미고래

반구대 암각화의 좌측 하단에는 손과 발을 한껏 과장한 인물상이 새겨져있다. 이러한 인물형태는 중국의 내몽고와 몽골지역, 미국 서남부지역의 암각화에도 자주 등장 하는데, 샤만 또는 신성한 인물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반구대와 천전리의 암각화에는 사람얼굴의 탈이 새겨져있다. 원시사회에서 탈은 영혼을 붙잡는 덫이었으며, 제사의식을 더욱 신비롭고 장엄하게 만드는 극적요소였다.

미국 테네시주의 인디언 무덤에서 발굴된 조개껍질 탈은 죽은 자에게 제2의 얼굴(영혼)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제작하여 넣었다. 하회탈춤에서 광대가 양반탈을 쓰면 양반이 되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샤먼과 탈을 새긴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영원성을 상징하는 바위에 샤먼의 형상을 새김으로써, 영원불멸의 제사장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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