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고 싶다. 내 맘대로만 할 수 있다면야 열 번인들 싫을까마는, 일부일처제라는 오랜 윤리적 이념이
'양심의 가책'으로 짓누르고, 직업이 요구하는 덕목이 이런 말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 여인들 사이를 재주 피우고 애 태우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자신도 없으며, 그 여인들에게 보대낄 바가지나 원성을 귓등으로 흘려 넘길 정도로 뻔뻔하지도 못하다. 할 일도 꼬리를 물고
밀려 있고, 하고픈 일도 태산 같이 쌓여 있는 터에, 몽상으로 아련하게 '상상그림'이나 그려보고 말 일이다.
[쉘
위 댄스]는 중년이 깊어가는 리차드 기어에게 바로 그런 사랑을 담아냈다. 모든 게 다 갖추어진 평범하고 안정된 다람쥐 쳇바퀴 인생. 그
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요, 그 틈새에서 조금씩 묻어나는 잔재미를 행복이라고 위로하고 싶은 무료함. 그런 안정과 다행과
무료함을 살짝 깨뜨리는 파문이 일었다. 만약 [브레스레스]나 [미스터 굳바]의 리차드 기어였다면, 맵고 찐한 섹스로 폭발하며 인생 전체를
짓이겨버렸을지도 모를 제니퍼 로페즈의 탱탱하게 뇌쇄적으로 아찔한 몸매를 그대로 곱게 놓아두고, 잠시 흐트러진 스텝을 추슬러 제자리로 아무 탈
없이 모범적인 가장으로 되돌아온다. 그 이어질 듯 말 듯한 사랑이야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반듯한 모범가정에 더욱 감동하고
다행스러워 한다.
이 영화는 몇 해 전에 상당한 인기를 모은 일본판
[쉘 위 댄스]을 그대로 미국판으로 다시 만들었다. 그 살짝 출렁이는 파문이 일본판에선 우아하고 잔잔하지만 미국판에선 도발적이고 강렬하다.
일본판은 조연들이 아주 돋보이지만, 미국판은 주인공이 아주 돋보인다. 제니퍼 로페즈의 강렬하게 매혹하는 육감적인 몸매와 리차드 기어의 완숙하게
익어가는 중년의 중후함이, 고혹적인 탱고가락이나 우아한 Moon River곡에 춤으로 녹아든다. 패트릭 스위지가 파릇한 젊음으로 달구었던 [더티
댄싱]에 탄성을 다시 되살려주었다. 똑 같은 줄거리에, 슬픈 눈망울에 가녀린 목과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단정하고 우아한 몸맵시 그리고 강렬하고
육감적인 정열로 달구어진 뇌쇄적인 몸매라는 전혀 다른 두 여주인공을 중심 삼아 흐트러짐 없이 탄탄하게 엮어낸 두 감독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