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물질 문명이나 거대도시에 깊은 그늘로 숨어있는 현대 사회나 미래 사회의 음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강렬한 색감과 이미지로 우리의 뇌리에
깊이 배어들어 가슴에 스며든다. 그 동안 만났던 그 어떤 사이보그 만화나 영화의 기법과 차원하고도 자못 다르고, 권위적 위선이 가득찬 학문과
예술에서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참신하고 구체적이다. ... 그림이 그렇고 색감이 그렇고 화면 구성이 그렇고 스산하게
깔려드는 음악이 그렇다. 그 어느 하나 범상치가 않다. 설정된 캐릭터의 분위기와 액션 그리고 그 주변에 설정된 갖은 소도구와 배경화면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참신한 사색의 산책길을 걸었다. ... ” [이노센스]가 이 감동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버전으로 잘 이어나갔다.
그래도 조금 다르다. [쥬라기공원]의 2편이 훨씬 다양한 공룡의 등장하여 1편보다 눈요기를 더욱
높여주기는 하였지만, 그 진한 감흥은 2편이 1편을 따르지 못해 보이듯이, [이노센스]도 [공각기동대]보다 기술적 엎그레이드가 두드러졌지만,
영상이나 상징적 이미지의 충격은 이젠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노센스]가 주는 기술적 엎그레이드도 상당하고 나름의 색다른 맛도 있으며,
시나리오나 대사도 나름대로의 깊이를 유지해 가기 때문에, [공각기동대]의 그늘에서 헤매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역시 2편은 1편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기에는 억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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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그래서 1편의 감동을 간직한 사람은 그 감동을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만끽하기 위해 꼭 보아야겠고,
1편을 감동하였어도 그 내용이 어려워 아직 어리벙벙한 사람이나 아직 1편을 보지 못한 사람은 1편을 비디오로 다시 보고 이 영화를 보아야
하겠다. 내용이 어렵다고 소홀히 할 영화가 아니다. 경찰청 여자 감식관이 푸념처럼 늘어놓는 독백과 악당 ‘김’이 벌이는 환상게임에서 나누는
대화에 이 영화의 어려운 사색적 고뇌가 한꺼번에 함축되어 있다. 여기에 현대사상의 다양한 인식패턴들이 녹아들어 있어 일반사람에게 낯설고
어렵겠지만, 이 부분의 대사를 놓치지 않고 잘 음미해야 한다. 정히 딱하면 스토리와 대사를 접어두고 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 화면과 음악 그리고
정성스런 색감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할 영화이다. 상징적 깊이가 참 대단하다. 어느 한 장면도 놓아주고 싶지 않다. 그래 저래 그 자리
앉아 두 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