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당한 여성노동자”
“우리는 당당한 여성노동자”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4.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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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트 전기 ‘부당해고’ 맞서 20여일째 철야농성 투쟁
정리해고 부당성 알리는 유인물 배포하다 눈엣가시 찍혀


‘기술로 50년 미래로 50년!’
‘로케트 전기는 부당한 정리해고 철회하고 해고자를 전원 복직 시켜라!’
광주시 북구 본촌동에 위치한 ‘로케트 전기’에서는 지금 정문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공장건물에 맞서 초라한 컨테이너 한 동이 절박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케트 전기’ 해고 노동자 8명이 지난 10일부터 ‘부당해고 철회’와 ‘전원복직’을 요구하며 20여일 째 철야농성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

지난 26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아직 채 녹지 않은 잔설을 인 컨테이너 한 동이 이들 해고노동자들의 고달픈 현실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공장 주변 여기저기 내 걸린 채 찬바람에 고집스레 맞서고 있는 ‘불법 정리해고’ 규탄 프랑들이 눈에 시리도록 아프게 밟혀왔다.


어느 순간 잔설에 반사된 햇빛 쪼가리 하나가 기자의 눈에 고여 ‘하얀 슬픔’처럼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컨테이너를 지키고 있던 여덟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너무도 씩씩했다. 설 연휴에도 쉬지 않고 당번을 정해 컨테이너 박스를 지키면서 철야농성을 계속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온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난로 하나 뿐이었지만 어쩌면 8명이 뿜어내는 체온만큼 그 겨울을 이겨나가는 데 서로에게 큰 힘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컨테이너 벽면에는 ‘단결투쟁갗‘철의 노동자’ 등 노동 가사와 ‘생활수칙’이 빼곡이 적혀 있어 이들이 싸움에 임하는 결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이와 관련, ‘로케트 전기’는 지난해 11월17일 노동조합에 정리해고를 통보하고 협의를 진행하다 60일만인 1월10일 이들 여성노동자 8명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대중국 경쟁력이 악화돼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해고사유였다.


사측, 산전휴갇육아휴직 사용하자 인사고가 불이익 줘
하루 12시간 연장근무·주야 맞 교대 등 노동강도 열악


사측은 또 정리해고에 앞선 지난해 11월24일부터 26일까지 희망퇴직 접수를 받아 월급사원 16명과 일급사원 9명 등 25명을 퇴직시키고 7급 기능직 4명과 8급 여성노동자 2명에 대해서 계열사 이동을 시키는 등 나름대로 해고회피 노력의 요건을 갖췄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이미 사측이 8명을 정리해고 대상으로 선별해놓고 법률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60일간 노사협의를 진행하는 척하다가 부당한 방법으로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 해고노동자 8명은 지난해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부당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사규위반으로 사유서를 제출하는 등 일찌감치 경영진의 눈밖에 났다는 점에서 해고자 선정기준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미경 조직부장은 “임성숙씨의 경우 사측에 정리해고에 대해 항의했다가 어울리지 않을 사람과 어울려 해고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혀 그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김 부장은 또 “정리해고 이전인 11월부터 이미 8명 해고자의 명단이 나돌았다”며 “모 간부가 체육대회 때 보기 싫은 것들을 구정이전에 정리해고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해고자들은 이어 사측이 평상시에도 12시간 동안 연장근무를 요구하고 주야 맞교대를 시키는 등 인력이 가뜩이나 부족한데도 정리해고를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특히 사측은 ‘산후 휴갗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며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는 등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해고 선정기준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남애성 조직부장은 “사측이 해고자 선정 기준을 정했다고 하지만 모두 여성들로 채웠다”며 “산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람에게 출근일 수가 적다며 호봉 승급을 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준 뒤 이들을 해고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남 부장은 또 “지난 97년 IMF 당시 상여금 100%를 반납하고 5월부터는 한 달에 이틀동안 무급으로 근무를 하는 등 고통분담을 해왔는데 사측이 경영난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8명을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사측은 정리해고 후 승진시험을 통해 대리급들을 과장으로 승진시키는 도덕적 해이마저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정리해고 후 승진시험 통해 대리급 과장진급 도덕적 해이<

오미령 집행국장은 “경영이 어렵다고 하면서 사측은 단 한번도 조합원들에게 경영난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적이 없다”며 “자신들은 기사 딸린 고급승용차를 몰면서 노동자들에게만 통상임금 64만원이라는 최저임금비를 약간 상회하는 급여를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 국장은 이어 “현재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전환해 근로시간을 단축시키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나눌 수도 있는데 사측이 한달 작업물량을 2주로 단축한 뒤 그 인력을 다른 라인으로 투입하는 등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강요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맏언니 격인 김정란씨는 “96년 입사한 이래 연장근로를 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협박을 2∼3차례나 받아 이제는 노이로제에 걸렸다”며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도 주야교대로 10개월 동안 일해왔는데 야간근무를 못한다는 명목으로 정리해고를 시켰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임성숙씨의 경우도 주야 2교대에 따른 연장근로로 피로가 쌓여 병가를 냈다가 출근 수가 적다고 호봉승급을 받지 못해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 해고자들은 지난 13일 광주지방노동청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낸 데 이어 17일에는 ‘부당노동행위’로 제소했다.

취재를 마치고 컨테이너를 나서는 순간 이제 프랑을 써야겠다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향해 총총히 사라지는 여성노동자들의 등뒤로 따뜻한 햇살이 포근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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