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계 세대교체 가속
한국불교계 세대교체 가속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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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계의 큰 별들이 잇따라 ‘임종게’를 남기고 ‘열반’에 들면서 자연스럽게 불교계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올 들어 번뇌의 불을 끄고 입적한 큰스님만 해도 어림잡아 여덟 명에 이른다. 지난 3월말 봉암사 조실이었던 서암스님을 시작으로 고송(9월) 청화(10월) 정대 덕암(11월) 덕명 월하 서옹스님까지 열반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해방이후 한국불교계의 기틀을 잡고 선풍을 진작시켜왔던 선승 1세대의 퇴장으로 2세대의 전진배치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남아있는 1세대 선승들도 70세 이상의 노령이 대부분이어서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 1세대 선승들은 주로 일제시대에 출가해 한국불교의 수행전통을 다시 세우는데 기여했으며 , 비구와 대처의 갈등으로 인한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열, 그리고 98년 조계종단 대분규 등을 원만하게 수습하는 등 위기 때마다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올 들어 해방이후 1세대 큰스님들 잇단 열반
서암-고송-청화-덕암-덕명-월하-서옹스님까지
일제치하에서 한국불교 수행전통 재수립 기여
입적 앞두고 남긴 열반송 풍성 세인 관심 끌어


한편 이들 1세대 선승들의 잇단 입적과 함께 이들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해 던진 임게송에 대한 관심도 크다. 임게송은 열반송이라고도 부르며 입적을 앞둔 선승들이 평생 수행을 통해 터득한 철학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한시의 형태로 일종의 유언장과 같은 것이다. 열반송은 선승들에게 첫 깨달음을 얻었을 때 터진 오도송(悟道訟)과 함께 한 일생의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이승에 남긴 유일한 흔적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암스님은 열반송을 통해 ‘달리 할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고 말해 ‘해탈의 경지’에 이른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루 한끼 식사(一日一食)와 40여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로 평생 선승의 길을 고집했던 청화스님도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
스러워 할 뿐이네’라는 임게송을 남겼다.

‘시골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은 월하스님은 ‘한 물건이 육신을 벗어나니/ 두두물물이 법신을 다투네/ 가고 머묾을 논하지 말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라는 열반송으로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고의 행정승으로 평가받는 정대스님은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니/ 우리 모두 꿈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고 노래해 생과 사의 관문을 무위로 돌려버렸다.

지난 13일 좌탈입망(坐脫立亡)의 모습으로 열반에 든 백양사 종정 서옹스님도 ‘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 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한 번 백학이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 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내네’라는 임게송을 남겼다.

서옹스님은 평소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참나’와 ‘참사람’을 찾아야 세상의 갈등과 투쟁이 사라지고 모든 생명이 존중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열린다며 ‘참사람’운동을 펼쳐왔었다. 서옹스님에 대한 다비식은 19일 오전 11시 백양사에서 종단장으로 치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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