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가 그려놓은 산 그림
영남알프스가 그려놓은 산 그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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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 산이야기(30)-가지산·운문산(1,240m·1188m 울산·경남 밀양·경북 청도)>


텅 비어 있는 들판, 붉은 색 옷으로 갈아입은 산, 산에 기대고 빈 들판을 마당 삼은 마을, 그리고 마을 어귀에 어김없이 서 있는 단풍 든 느티나무 고목. 이런 평화로운 풍경 위에 아침 안개가 하얀 드레스를 입은 듯 살포시 덮여있다.

경부고속도로 언양나들목을 빠져 나오자 영남알프스의 산줄기가 웅장하다. 영남알프스는 영남지역에 형성된 해발 1,000m가 넘는 높고 거대한 산군(山群)으로 알프스에 비길 만큼 아름답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주문을 지나 소나무·굴참나무·서어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이룬 석남사 가는 길이 고즈넉하다. 숲 속 공기는 맑고 청량하며, 붉게 물든 나뭇잎은 화려하면서도 처연하다. 계곡의 물소리가 청아하고, 물위를 떠다니는 낙엽은 사색적이다.

석남사에서 걸어나오는 비구니 스님의 티없이 맑은 얼굴과 석남사 가는 길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룬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런 조건에서 수도 정진하는 비구니 스님의 마음씨는 아름다운 자연을 닮았을 것이다.

석남사 앞 다리를 건너 2층 누각인 침계루 밑을 통과하니 대웅전 앞마당이다. 대웅전 앞에 우뚝 서 있는 삼층석탑이 우람하다. 넓지 않은 공간에 너무 큰 석탑이 자리잡아 대웅전을 비롯한 주변 건물이 위축되어 버렸다.

비구니 스님의 얼굴은 티가 없고


석남사는 운문산 운문사, 계룡산 동학사와 더불어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명성이 있은 절이다. 대웅전과 강선당 사잇길로 빠져 나와 절 뒤로 올라서서 만난 부도(보물 제369호)가 화려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수종이 점차 참나무로 바뀐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서로 의지하며 '더불어 숲'이 된다. 거센 눈보라와 비바람에도 '더불어 숲'이 있어 나무들은 의연하게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소리는 맑고 고운 음악이다.

나무 위로 비취는 푸른 하늘이 더없이 청명하다.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우리나라의 가을날씨는 등록되지 않은 국보다. 임도를 버리고 계속 능선을 따라 오르니 10m 높이의 벼랑을 이룬 귀바위가 나그네를 맞이한다. 귀바위에 올라서자 시원스러운 전망이 확보된다. 무엇보다도 내려 보이는 석남사가 산비탈의 붉은 단풍에 물들어 앳된 처녀 같다. 가지산 정상과 능동산에서 천황산·재약산으로, 간월산·신불산·취서산으로 뻗어나간 영남알프스의 거대한 산군은 공룡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언양과 울산 시내 너머로 동해 바다가 가물거린다.

영남알프스의 고봉 중에서도 가장 높은 가지산에 올라서자 사방에서 아름다운 풍경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가지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운문산까지도 시야에 들어오면서 영남알프스 전체가 첩첩한 산 그림을 만든다. 가지산 정상 아래에서는 억새가 은빛으로 휘날리고 있다. 은빛 물결 위로 영남알프스의 거대한 산줄기가 꿈틀거린다.

단풍잎이 되어버린 내 얼굴


가지산 정상이 그렇듯이 운문산으로 가는 길에서도 잠시 암릉이 길손을 맞이한다. 암릉에서 바라본 산골짜기의 곡선미가 부드럽다. 왼쪽으로 천황산과 재약산 줄기가 계속 따라붙고, 오른쪽으로는 운문사로 향하는 산줄기들이 비탈을 이룬다.

운문산 마루 역시 전망이 시원하다. 산마루에서의 맛은 뭐니뭐니해도 조망에 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산과 들판, 그리고 마을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자연은 아름답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운문산 9부 능선쯤에 있는 작은 암자 상운암이 이름 그대로 구름 위에 떠 있다. 초라한 양철지붕을 한 볼품없는 암자지만 나는 이런 곳에서 욕심 없는 절의 모습을 본다. 마주 보이는 억산의 바위들이 부처님인 양하고, 그 아래로 펼쳐지는 산자락은 인간이 사는 세상 같다. 암자 앞에서 푸릇푸릇 자라고 있는 배추들은 맑고 고운 눈동자를 가진 동자승으로 보인다. 암자에는 스님은 보이지 않고, 처사 한 분이 기거하고 있다.

암자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서자 금방 물소리가 들려온다. 깊은 산 속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청아하다. 밝은 햇살에 비췬 단풍잎이 현란하다. 계곡물 위에 비췬 단풍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얼굴도 단풍잎이 되어 물위에 떠다닌다. 이런 환경 속에 있는 나는 맑은 물에 마음을 가꾸는 수도승이 되었다가, 아름다운 시구를 묘사하는 시인도 되었다가, 화려한 색채를 화폭에 옮기는 화가도 된다.

하산 후 막걸리 한 잔 마시는 맛이 그지없이 좋다. ‘풍요로운 마음’을 안고 버스에 몸을 실으니 창 밖으로 어둠이 찾아들고, 눈이 살며시 감기기 시작한다.





▷산행코스
-. 제1코스(종주) : 석남사 주차장(10분) → 석남사(1시간) → 임도(40분) → 귀바위(30분) → 쌀바위(40분) → 가지산(1시간 40분) → 아랫재(1시간) → 운문산(20분) → 상운암(1시간 20분) → 석골사(20분) → 원서리 (총 소요시간 : 7시간 40분)
-. 제2코스(가지산 코스) : 석남고개(1시간 40분) → 가지산(40분) → 쌀바위(30분) → 귀바위(30분) → 임도(40분) → 석남사(10분) → 석남사주차장 (총 소요시간 : 4시간 10분)
-. 제3코스(운문산 코스) : 원서리(20분) → 석골사(2시간 10분) → 운문산(40분) → 아랫재(1시간) → 남명리 (총 소요시간 : 4시간 10분)
▷교통
-. 경부고속도로 언양나들목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밀양 방향으로 달리면 석남사 주차장에 닿는다. 남명리나 원서리는 석남사를 지나서 24번 국도를 따라 석남터널을 통과하면 나온다.
-. 석남사는 언양에서 370번 시내버스가 자주 다닌다. 밀양에서는 원서리와 남명리를 경유하여 석남사까지 가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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