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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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 산이야기(29)-도명산·낙영산(643m·742m 충북 괴산)>


옛 선비들은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글 읽고 시 읊기를 좋아했다. 아름다운 환경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래서 선비들은 티없이 맑은 물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닦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느끼는 감흥을 시로 읊었다.

조선중기의 뛰어난 학자요, 노론의 영수격인 대정치가로 족적을 남긴 우암 송시열도 벼슬길에서 물러나 화양구곡에 들어앉아 글을 읽고 제자들을 불러들였다. 맑은 물을 끼고 산 속으로 10리를 굽이굽이 흘러가는 화양구곡을 두고 옛 사람들은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 일컬었으니 낙향한 송시열 선생이 고향 근처인 화양동으로 찾아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화양구곡으로 들어서자 치솟은 바위가 하늘을 떠받들 듯한 경천벽(擎天壁)이 맑은 물과 함께 일행을 맞이한다. 화양구곡 중 제1곡이다. 송시열은 이곳에 내려와 살면서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화양동계곡의 절경 아홉 군데를 골라 각기 이름을 붙이고 화양구곡이라 했다.
거울처럼 맑은 물에 지나던 구름 그림자도 맑게 비췬다는 제2곡 운영담(雲影潭)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시멘트 보가 막아져 자연스러운 감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운영담 옆에 서 있는 10m 높이의 바위조각품과 격조 높은 적송이 잔잔한 호수와 어울려 있는 모습이 가히 절경이다.

화양구곡 정원 삼은 암서재

화양구곡의 절경은 결국 나를 계곡으로 끌어내린다. 계곡에는 깔끔하게 잘 생긴 바위들이 눕거니 서거니 하고 있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계류는 경사진 바위에서 하얀 물방울을 만들어내다가 너럭바위가 있는 곳에서 잠시 멈추어 옥빛으로 반짝인다. 화양구곡의 절경 중에서도 손꼽히는 금사담(金沙潭)이다.

송시열은 제4곡에 해당하는 금사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정원 삼아 높직한 암반 위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암서재라 했다. 부드러운 산줄기와 붉은 줄기에 푸른 잎을 자랑하는 노송의 품위까지 끌어들인 암서재는 화양구곡에서 가장 행복한 시설물이다.

맑고 고운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에 학이 둥지를 틀었으니 학소대(鶴巢臺)다. 학소대의 우뚝 솟은 바위에는 노송이 어김없이 걸쳐있다. 학소대 앞 철다리에서 바라보는 화양구곡이 한없이 정결하고 포근하다.

낙영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던 터에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조그마한 암자 하나 들어설 수 있는 공간 뒤로 수십 미터 높이의 바위가 앞뒤로 우람한 모습을 한 채 서 있고, 그 틈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거대한 바위에 고려 초기에 새긴 선각 마애불상 3기가 세상의 평화를 염원하며 미소짓고 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있을 때보다도 이렇게 그 의미를 인공으로 불어넣었을 때 훨씬 아름다워진다.

마애불에서 마음을 비우고 도명산 정상에 올라서니 하늘을 날을 듯한 기분이다. 나는 마음이 만들어준 날개를 달고 주변 기행에 나선다. 진흙을 버물러 빚어놓은, 지조 높은 선비처럼 깔끔한 바위와 초록적삼에 다홍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소나무가 가깝고 먼 산줄기를 끌어들여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가령산 낙영산 조봉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이 가까운 거리에서 타원을 이루며 다가오고, 그 뒤로 대야산에서 조항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의젓하다. 낙영산 고개 너머로 살며시 고개를 내민 속리산 서북능선이 불꽃처럼 타오른다.

선비 같은 바위, 아낙 같은 노송

산의 남성적이고 수직적인 모습과 여성적이고 수평적인 계곡(화양구곡)이 만나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화양구곡에 앉아 있는 암서재가 이런 모습을 만끽하며 행복해 한다. 낙영산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본 685봉도 깔끔하게 빚어놓은 벼랑이 산비탈을 이루고 있다. 저 깔끔한 바위 아래에 공림사라는 절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낙영산으로 가파른 길을 올라선다. 산길은 인간이 한평생을 살아가는 길과 같을 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각기 다른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올라가면 내려가지 않으려 하고, 내려가 있으면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마구 끌어내리려 한다.
낙영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이정표도, 만나는 사람도 없다. 이런 길에서는 길을 잘못 들어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 우리가 그러했다. 가령산으로 가려는 우리의 계획은 앞사람이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백악산 방향으로 남진해 버린 것이다.

확실한 위치를 확인한 것은 백악산에 오르기 전에 만나는 수안재에서다. 여기에서 백악산까지 오르면 좋겠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하산을 하고 보니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다.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화양구곡 입구인 화양교에서 내린다. 맑고 고운 화양구곡이 변함없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이한다.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화양구곡 주차장(30분) → 학소대(1시간) → 도명산(50분) → 685봉(30분) → 낙영산(1시간 30분) → 가령산(50분) → 자연학습원 (총 소요시간 : 5시간 10분)
-. 제2코스 : 공림사(1시간) → 685봉(30분) → 낙영산(30분) → 685봉(40분) → 도명산(40분) → 학소대(30분) → 화양구곡 주차장 (총 소요시간 : 3시간 50분)
-. 제3코스 : 화양구곡 주차장(30분) → 학소대(1시간) → 도명산(50분) → 685봉(30분) → 낙영산(1시간 20분) → 수안재(1시간40분) → 백악산(1시간 30분) → 옥양동 주차장 (총 소요시간 : 7시간 20분)

▷교통
-.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을 빠져 나와 증평읍에서 592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청천면소재지를 지나 부흥에 이른다. 부흥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금평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2번 지방도로를 달리면 화양구곡 입구인 화양교에 도착한다. 화양교에서 우회전하여 1~2분만 가면 화양구곡 주차장에 닿는다.
-.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청천면을 거쳐 화양구곡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20분~30분 간격으로, 괴산에서 청천을 거쳐 화양구곡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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