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리온]에 추락하는 성룡이 가엾다!
[메달리온]에 추락하는 성룡이 가엾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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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달리온
이소룡의 액션은 ‘신화’이다. 그의 분노는 칼끝에 이는 바람처럼 서늘하다. 모진 광대뼈에 날카롭게 긁힌 발톱자욱, 쌍절곤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노려보는 그의 눈빛 그리고 단단히 다져진 철골 근육과 몸짓은 시퍼렇게 이글거리는 야수이다.

코끝을 퉁기며 귀청을 찢는 괴성은 모든 걸 끝장내 버린다. 나비처럼 가볍고 제비처럼 빠르고 표범처럼 매섭다. 그리곤 해머처럼 지끈 박아버린다. 그의 영화에서 볼만 한 건 그의 액션 하나 뿐이다.

나머지는 싸구려 삼류이다. 그의 액션을 보는 순간, 나는 그의 모든 것에 넋을 잃어버렸다.

이보다 멋진 액션은 아직 없었고 장차도 없을 게다. “신이 죽었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사무치게 안타까웠다. 지금도 틈틈이 생각한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참으로 애통하고 애절하다. 남의 일로 이렇게 안타까운 적은 아직 없다. 성룡과 이연걸이 그 안타까움을 모두 메워 주지는 못했지만 그나마라도 달래주었다.

성룡의 [취권]을 우연히 만났다.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시절, 펄펄 남은 긴 하루해를 이기지 못해, “영화나 하나 보자”며 친구하고 길가의 포스터를 뒤지다가, 마지못해 골라서 본 영화이다. 지금은 대인시장을 골리앗처럼 내려보며 짓누르는 건물자리의 <시민관>에서. 배꼽이 빠져라고 웃다 웃다, 마지막에 “샴페인!”하며 외치는 대목에서 자지러지게 숨넘어간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성룡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다 보았다. 기분으론 몇 백 개쯤 되는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주어 섬겨보면, [용소야] [사형도수] [베틀크릭] [오복성] [쾌찬차] [프로텍터] [폴리스스토리]1, 2 [용형호제]1, 2 [미라클] [프로젝트A] [쌍용회]…. 성룡은 끊임없이 파워풀했고 기발했고 신바람 났다. 세월의 세파가 아무리 몰아쳐도 성룡을 보면서 함께 싱싱했고 함께 천진했다.

그 사이 사이에 홍금보의 [귀타귀]도 있었고 원표의 [공작왕] 양자경의 [예스 마담]이 있었으며, 우리의 [황비홍] 이연걸도 있었다. 그 나름의 맛이 다르기에, 우열을 말한다는 건 옳지 못한 일이지만, 성룡영화는 그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성룡이 <골든 하베스트>영화사하고 삐걱거린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그런가 했는데 [홍번구] 뒤로 나온 [빅타임] [러시아워]가 김빠지고 싱거웠다.

스토리는 뻔했고, 아이디어도 시들했고, 액션도 탄탄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그 속내는 모르지만, 수준 낮은 감독들에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면서 그의 재능이 낡아가며 추락하였다. 안타깝다. [턱시도]와 이번 [메달리언]에서는 더욱 잔재주가 넘치고 설치고, 자질구레한 컴퓨터 그래픽까지 끌어들여 뻥치고 튀겨서 껍데기를 잔뜩 부풀려 놓았다.

[턱시도]를 보고는 추락하는 성룡에게 실망했는데, [메달리언]을 보고는 휘둘리는 성룡이 가여워졌다. 성룡이 이렇게 추락해 감에도 아직도 그를 찾아보는 것은, 혹시나 그가 옛 모습을 되찾았나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니 포스터에 “액션지존 성룡부활”이라는 선전글귀에 쉽게 속고 예고편의 화려한 유혹에 깜빡 넘어간다.

“액션지존 성룡부활”이라는 선전글귀로 손님을 유혹하는 걸 보면, 그들도 성룡이 가라앉고 있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알면 고쳐야 할텐데 알면서도 그의 재능을 그대로 빨아먹는 건, 그들이 개인적으로 나쁘다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잘못된 수렁에 빠졌다는 증거이다.

액션의 대스타가 어떻게 이런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넉넉하게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온통 그런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쓸만한 사람을 더욱 알차게 가꾼다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으로 빈 껍질만 남을 때까지 빨아먹기만 한다. 그러니 내가 옛 성룡의 부활을 기다리는 건, 우리나라에 ‘사람다운 세상’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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