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파의 달
샤파의 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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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까지 '살찐 소파'에 앉아 텔레비젼의 미-이라크전 파병 찬반양론을 봤다. 찬성론자들 참 울화를 치밀게 했다. 토론을 보는 동안에도 나는 리모컨을 돌려 YTN 뉴스를 보곤 했다. 다른 소식을 전하는 틈틈이 그곳 전황들이 밑줄글씨로 스쳐 지나가곤 했는데, 토론을 하는 그 시각에도 이라크의 하늘 위에는 미사일이 날고 있을 터였다.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는데, 국익에 도움이 된다나, 파병하면 전후 120조원이 투여될 '복구'에서 공사를 딸 수 있다는 둥, 북을 안칠 거라는 둥... 한마디로 기가 꽉 막혔다.
헌팅턴은 문명충돌론에서 힌두문명과 기독교문명이, 그러그러한 문명권들끼리 충돌할거라고 했다는데, 그거 역시 시오니즘의 아류이고, 기실 우리는 아랍에 대해 잘 모른다. 광폭한 사람들, 가난, 석유,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의 충돌...

1984년인가, 실천문학에서 [팔레스티나 민족시선]이라는 시집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도 여러편 실려 있었고, 지금 잊혀지지 않는 건, '샤파의 달'이라는 시다. 샤파지역의 하늘에 뜬 달을 노래한, 하늘의 초승달과 눈망을 초롱초롱한 여자가 그 달을 우러르며 기원하는 흑백의 컷과 함께...

내게 아랍인들은 항상 사막과 낙타로 떠오른다. 먹을 것을 찾아, 사막의 풀을 뜯어먹고 사는, 낙타를 타고 물건을 멀리 팔고, 이웃지역을 여행하고, 그 젖을 먹고... 그들은 낙차를 타고 먼 길을 가다가 밤이면 사막에 천막을 치고 자다가 신께 기도한다고 했다. 그 하늘 위에 초승달이 떠올랐으리라. 그것을 나침반 삼아 여행하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이라크 당국이 주민들에게 물품들을 나눠주는 무슨 차 옆에 그 초승달을 크게 디자인 한 걸 봤다. 아랍사람들에게 초승달은 그런 의미일까?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는 많은 출품작 중에 슐레이 만수르라는 팔레스타인 한 작가의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이스라엘에 맞서 독립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바친 독립영웅의 인물상을 흙으로 엷게 부조로 형태를 뜨고, 그것이 마르니깐, 꼭 장마에 우리네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진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충격이었다.

아마 그네들도 일부지역에서는 쌀농사를 짓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깐, 그 흙, 논흙, 조국, 독립 이런 게 가능했을테니깐... 참, 생각해보니 절규하는 쿠르드의 형상도 있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는 있는 사람 앞에서 우린 너무 '야만'스럽게 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주저앉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부상당해 병원에서 머리를 싸맨 채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이가 생각난다. 그애의 가슴 속에 무엇이 자랄까? 이 시각, 샤파의 하늘 위에는 미사일의 섬광 대신 달이 뜨길, 그들의 신께 기도한다.

<'광주미술'을 담은 홈페이지 http://skasuz.nawow.net '윤정현의 이미지산책'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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