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죽은 올빼미 농장, 영원한 이방인
(신간)죽은 올빼미 농장, 영원한 이방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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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아파트먼트 키드의 30년만의 외출과 귀환


백민석의 경장편 소설『죽은 올빼미 농장』은 작가정신이 열아홉 번째로 펴내는 ‘소설향’이다.『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목화밭 엽기전』등을 통해 일탈과 반反모럴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글쓰기와 독법을 제시한 작가는 이번에 ‘아파트먼트 키드의 30년 만의 외출과 귀환’을 화두로 삼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흙 한 번 몸에 못 묻혀보고 자란 주인공은 서른이 넘도록 혼자 아파트에 사는 대중가요 작사가이다. 또 하나의 ‘나’인 ‘인형’과 대화하고 ‘자장가’에 집착하는 이 퇴행적 인간은 어느 날 30년 전에 사라진 ‘죽은 올빼미 농장’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홀린 듯 농장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농장 사람들의 몰락과 죽음,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손자’의 죽음을 목도하고, 폐허가 된 농장에 들샘을 파고 ‘인형’을 수장하기에 이른다. 오랫동안 입속을 맴돌던 자장가도 마침내 예비 가수의 노래로 떠나보낸 뒤, 늦은 밤 자신을 실은 택시가 ‘영원히 달려주’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간다.

작가는 아파트먼트 키즈를 ‘진화한 존재’라기보다 ‘기형적 존재’로 보고 있다. ‘죽은 올빼미 농장’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은 아파트먼트 키즈의 내면 탐색 과정이자 ‘자아’와 ‘환경’의 조화를 모색하기 위한 외출이다. 이 작품에서는 세계와의 소통을 위해 ‘인형’을 수장함으로써 ‘죽은 올빼미 농장’의 환상을 떨치고 새로운 자아로 귀환한다.
주인공 내면의 광기 어린 분열 양상을 팽팽한 긴장상태로 몰고 가는 능란한 글쓰기와 대중음악 소설의 가능성까지 모색하며 내밀한 변신을 꾀하고 있는 백민석의 소설 『죽은 올빼미 농장』이다.
/ 백민석 저, 작가정신 출판, 2003, 7900원


<영원한 이방인>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아픔 그려


'영원한 이방인'은 한마디로 사설 탐정인 재미교포 2세 헨리 박이 한국계 시의원인 존 강의 뒷조사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면서도 결코 미국인이 될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민 사회의 애환을 그린 것이다.

한국의 명문대를 나왔으나 미국으로 건너온 뒤 야채상을 하며 돈벌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언어의 장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늘 주눅들어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 그들로 대표되는 이민 세대와 달리, 이민 2세인 주인공 헨리 박은 미국의 명문대를 나와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고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등 언뜻 보기엔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듯이 보인다.

그러나 아들 밋이 백인 아이들과 놀다 밑에 깔려 죽는 사건을 계기로 그의 삶은 균열을 일으킨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와의 갈등이 심화된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나면서 건넨 목록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아주 비밀스러운 사람. 인생에서 B+ 학생, 불법 이민자, 감정이 격한 이방인, 황인종. 근래에 이민 온 사람, 이 세계에 낯선 사람으로 이류인, 배신자, 스파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직업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인물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캐내는, 이를테면 사설 탐정.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뢰인으로부터 주문을 받지만 정작 자신이 캐낸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오직 자신에게 요구되는 정보를 캐내는 일을 할 뿐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심지어 아내에게까지도.

그러던 중, 그는 뉴욕 시장 출마가 유력한 존 강이라는 한국계 시의원의 뒤를 캐면서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존 강은 어린 나이에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자수성가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 그는 모국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이란 틀에 얽매였던 헨리 아버지와 달리,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정치란 광장에까지 진출, 민족융화정책을 펼 것을 주장하다가 그를 견제하는 세력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파멸하고 만다. 존 강의 파멸 과정을 지켜보면서 헨리 박은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그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변방을 서성이며 살아가던 그의 삶이 더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헨리 박이 삶의 새로운 지평에 눈뜨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희망의 메시지로 끝난다. 즉 정보원 노릇을 그만두고 새로 이민 온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이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추리 기법을 동원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날카로운 심리 묘사, 감성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우리를 매료시킨다. 소설을 읽다 보면 때로는 슬픔이, 때로는 애잔한 감동이, 때로는 신랄한 조소가, 때로는 숨막히는 갈등이, 때로는 분노가 우리를 덮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미국이란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곱씹어 보게 된다.

/이창래 저, 나무와숲 출판, 2003,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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