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그들의 수난사는 진행중
민초, 그들의 수난사는 진행중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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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센터 기공식, 그것은 경사가 될까? 아니면 재앙이 될까?" 국민의 엄청난 혈세를 퍼붓는 국책사업에 감히 재앙운운 하는 비유를 들이댈만한 용기는 나에게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숱한 재앙들이 어디 처음부터 송곳니 들이대며 대들었던가! 좀 멀리는 민족 분단의 재앙이 해방의 감격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에 현명하게 대처치 못한 수치스러운 업보라면, 가깝게는 시화호의 경고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새만금 사업의 강행은 뻔히 손에 잡히는 더 큰 재앙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우의 반복이 아닐는지.

우주센터가 들어서는 고흥 하반

고흥군수에게서 우주센터 건설과 관련한 환경영향평가 자료를 물었던 고흥뉴스 기자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없답니다"였다. 평가를 했더라도 전임군수 사절에나 했을 건데 자기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단다. "아니 그것이 무슨말이다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본인은 우주센터 사업결정 당시 재임자가 아니었다는 항변일진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말이나 되는 항변인가?

고의로 공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행정구역 내에 들어서는 엄청난 규모의 건설사업으로 야기될 생태환경에 끼칠 영향 평과의 결과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보다 못한 사업들에도 경제성 여부를 따지지 않던가? 자연 생태 환경을 돈으로 환산 할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우주 센터 건설에 따른 외나로도 일대에 끼칠 환경 영향 평가는 당연히 선결되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건 절대 그대로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인 것이다.

우주센터 건설 현장인 외나로도 일대는 자연환경이 너무나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청정 해역으로 설마 환경 영향 평가도 없이 우주센터의 건설이 책정, 기공됐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가 있겠는가? 뭔가 정상적인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는 예감을 떨칠 수 가 없다.

보상도 끝내지 않고 삶의 터전 파헤쳐…주민들 마냥 대기 상태

우리 일행은 스페이스 캠프 후보지의 현장답사를 위해 나섰던 참이었으나 장기자의 군수면담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하반으로 돌렸다. 기공식 후의 하반과, 그곳 주민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아무런 평가 기준도 없이, 납득 할만한 설명 한마디 없이, 대대로 살아오던 생활 터전에서 내몰리게 된 하반 사람들. 갑자기 그들이 보고 싶었다. 군수의 책임회피 한마디에 내 가슴이 이렇게 억울한데 정작 하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공사는 마을 중심을 흐르고 있는 맑디맑은 개천을 덮어씌우는 일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중장비들의 아우성은 먹이를 만난 맹수들의 표효를 닮았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마을의 모습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나무 그늘에 평상을 내놓고 앉거나 누운 노인들은 아무런 표정들이 없다. 외지사람들의 방문에도 관심이 없다. 마을 전체가 마치 심연에 빠진 느낌이다.

바닷가 방품림 그늘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중년층 주민들에게로 가서 함께 자리를 했다. 그들 역시 생업인 어장마저 손을 놓고 앉아 어차피 떠나야 할 고향에 대한 미련을 식히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슈퍼에서 소주와 음료수를 사와 자리를 함께 했다. 어색한 대화의 말코를 트는데는 역시 술이 제 몫을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업 보상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가진 전답 없이 오로지 바다에 메어 평생을 살아온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당연한 기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보상이, 제일 먼저 챙겨졌어야 할 생명줄에 관한 보상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무런 욕심 없이 살아온 이들의 터전을 들쑤셔놓은건 누구인가? 생업을 손놓고 하늘만 바라보게 만든지 몇 달인가? 삶의 터전을 짓이겨 날마다 파헤치면서도 그들의 한줄기 작은 희망, 어업 보상에 관한 대답은 아직도 없단 말인가?

하반의 비극, 세도가 착취에 쫓기는 우리민족 수난사 닮아

그들은 로케트에 관심이 없고 우주의 개념도 모른다. 우주 항공 기술이 나라 발전의 전략 기술이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도 실감나지 않는다. 우주 산업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자신들의 생활 터전까지 받들어 우주의 메카로 제공했는데도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서는 하반 주민에 대한 예우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항변은 기공식 때의 초청을 정중하게 거절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현지 주민들의 좌석이 공석으로 남게 해 무언으로 마지막 항변을 해 보았을 뿐이다. 기공식 장에 채우지 않은 하반주민 초청좌석은 그들의 가슴, 가슴마다에 각인 되어 영원한 상흔으로 동공처럼 남으리라.

그리고 다시 침묵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밟으면 밟히고, 다시 일어서고, 이 남해바닷가 외딴 마을 하반 사람마저도 어쩌면 우리 백성의 수난사를, 이민족의 민초 의식을 그리도 꼭 빼 닮았을까! 이나라 섬의 역사가 대부분 그러했듯, 이들도 세도가의 횡포와 왕조의 못견딜 착취를 피해 서럽게 쫓기다 쫓기다 섬마을 하반에 정착한 선대의 후예가 아닐는지.

수목 조사를 하여 이식할 필요가 있는 나무들은 따로 장소를 정해 이식을 할거라는 당국의 언급이 있었단다. 기가 막히다. 지금 중장비들이 저렇게 휘젓고 다니는데 어디를 언제 조사한단 말인가! 치미는 분노는 엉뚱하게 죄없는 마을사람들에게로 향하고 말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그 종류 따위를 이야기 하는거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방품림, 이 나무들은 모두가 이 마을에 여러분의 선조께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했고 대대로 마을을 보호해 준 수호신입니다. 이 마을과 애환을 함께 하며 수백년을 버텨온, 단순한 나무가 아닌, 마을의 역사입니다. 그런 나무들이 아니 마을의 역사가 무참히 슬어져 갈 운명인데 억울하다는 생각들 안듭니까?"

갑작스런 나의 흥분에 마을사람들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다. 아! 위대한 민초들이여! 당신들의 수난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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