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론]공약(公約)과 공약(空約) 사이
[문화칼론]공약(公約)과 공약(空約) 사이
  • 김하림
  • 승인 2003.09.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일 노무현대통령과 광주전남지역 언론인과의 대화는 여러 면에서 주목되는 일이었다. 특히 지역의 다른 현안도 다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문화수도'에 대한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구상이나 의지가 어떠한가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국립광주아시아문화전당'이라 불리는 '퐁피두센터'와 같은 '복합문화센터'의 건립이 한 축이고, (동)아시아문화의 교류와 문화산업을 위시한 여타의 작업이 다른 한 축이라고 보여진다. 예산은 대략 2조 원 정도를 추산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상에 대해 지역의 반응은 두 가지로 크게 나뉘어지는 듯 하다. 사업기간이 너무 길게 잡혀져 있다는 점과 사업비의 조달이 지역의 여건상 어렵다는 점을 들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과 중앙정부의 추진의지는 어느 정도 확인되었으니 구체적 실행파일을 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시각이다.

선거과정에서 무수히 제시되는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제대로 실행된 적이 거의 없다는 경험적 지혜에서 본다면 공약(空約)이 되지 않은 것을 안도해야 하는지, 아니면 과연 '문화수도'에 걸맞는 구상인가 하는 의문 속에서 역시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다고 판단해야 할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약 5000억이 투입될 예정인 '국립복합문화센터'는 논외로 한다면(퐁피두센터는 건립시에는 토지구입비까지 포함해 약 9억9천만 프랑이 들었고, 2000년 재수리시에는 5억 7천만 프랑이 들었다고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6억 6천만 프랑으로 우리 돈으로는 2천 4백억원 정도), 문제는 여타 부분이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사업기간이 너무 길고 사업비 조달이 어렵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왜냐하면 현 시점에서 무슨 사업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의 계획이 지역이나 중앙에서 아직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간과 비용의 문제를 제기하려면 무슨 사업을 어떻게 전개하겠다는 디자인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또 비판적으로 보자면, 지역에서는 '지역적 시각'에 매몰되지 않는 전국적, 아시아적 시각과 전망 속에서 나름대로의 구상과 계획을 꾸리지도 못하고 있다. 더욱 비판적으로 보자면 '문화'라는 것이 일순간의 집중적 투자로 어떤 목표치에 도달하는 그러한 '성격'을 지닌 것은 결코 아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책임이나 주도권의 문제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그랜드 디자인'을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만들 필요가 있다. 지역과 한국과 아시아라는 세 층차의 문화를 어떻게 교류하고 결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복합문화센터'를 중심축으로 설정하고 여타 분야를 배치할 것인지, 아니면 '복합문화센터'도 '아시아 문화중심'의 한 부분으로 설정할 것인지, 향후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광주는 '문화'를 통해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의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지난 시기에 압축적 근대화를 추진한 우리 사회는 '산업화'를 그 주축동력으로 삼았다. '산업'은 속도와 배타적 경쟁을 기본 논리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지역은 소외되었고 이로 인한 낙후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약(公約)'에 매달리고 발목잡고 떼를 쓰기도 한다. '당신이 직접 한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 것인가'하고 소리 높이면서.

그러나 '문화'는 경쟁이나 속도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느림과 타자에 대한 배려, 차이의 인정, 상부상생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수도'의 추진에 있어서는 오히려 애정있는 설득과 논리적 그랜드 디자인이 요구되는 것이다.

일찍이 백범 김구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고 지금으로부터 50여 년전에 갈파한 바가 있다.

이러한 예지가 실현되게 하는 작업은 지금부터, 우리 지역에서 이다고 하면 지나친 자부이거나 과장일까?.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 대표, 조선대 중국어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