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자리 뒤집기!
'관객'의 자리 뒤집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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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불구경·싸움구경·굿판·포르노 같은 화끈한 것부터 시시콜콜하거나 신비롭거나 멋들어진 볼거리들을 즐긴다. 생각지도 않은 굿을 보게되는 우연찮은 일도 있지만,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즐기기도 한다. TV·영화·인터넷·인쇄물처럼 아무 때고 마음대로 골라 볼 수 있는 가공된 매체들도 좋고, 공연이나 퍼포먼스 같은 직접적인 행위의 현장을 즐기는 재미도 특별나다. ©비엔날레

요즘은 '문화'라는 게 공기나 밥처럼 자연조건이 되고 있다. 물론 어느 집단이나 지역이나 세대 속에서 나타나는 특정 성향과 현상들이 '무슨 무슨 문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일정한 목표와 인위적 노력들로 새롭고 특별한 지평을 열어 가는 문화현장 활동들처럼 의도된 생산작업에 의한 것들도 많다.

그런 문화 판에서는 과거 '집단의 시대'와는 분명 다른 개개인의 선택과 참여가 무엇보다 관건이 된다. 그래서 뜨내기 구경꾼이든 매니아든 열성고객이든 구경꾼 숫자로 그 판의 성패가 가늠되는- 이른바 '행사'라는 것들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관객'은 구경꾼이 아닌 아주 귀한 손님이 되기도 한다.

크고 작은 축제행사에서 대책 없이 부풀려지는 관람객 숫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음반이나 서적에서 밀리언셀러, 영화개봉관에서 몇 백만 돌파 성공신화를 끊임없이 갈아치우는 주체는 바로 관객이자 수용자이다. 관객은 상품을 소비하는 고객이면서 결국 그 상품의 명운을 좌우하는 결정권자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화적 소통과 교감이 우선되어야 하는 문화체험 현장에서는 외적 거대논리로 질을 포장하려는 숫자의 계측이 관객 개개인의 내적 반응의 정도보다 우선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110여 년 역사로 지금 50회 째 행사를 치르고 있는 베니스비엔날레는 부제를 '관객 갈등(The Dictatorship of the Viewer)'이라 붙였다. 전시총감독인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관객은 그자신의 경험·관점 그리고 시대의 독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피동적 소극적 구경꾼이 아닌 자신과 시대문화의 적극적 주체로서의 관객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소비자로서 관객'의 위치를 아예 뒤집는 문화판 만들기가 준비되고 있다. 내년 9월부터 열리는 2004광주비엔날레의 전시방향이 그 것인데,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상호침투를 가시화 하는 모델을 제안하겠다'는 게 이용우 예술총감독의 기본 입장이다. '관객을 피동적 수용자나 소비자의 위치에서 능동적 생산자로 전환시켜' 전시기획 과정부터 주체로 참여토록 하고, 그 아마추어 관객큐레이터들이 전문 작가와 전시기획자들과 협업을 통해 '예술의 생산과 소비구조에 대한 적극적 재해석과 다변화를 실현'해내는 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창설 10주년 째라는 계기성 의미도 있지만 비엔날레 역사를 새로 쓰는 포커스를 관객에 맞춰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적 쟁의의 현장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관객과 작가의 관계 전복 또는 경계 허물기일 수도 있는 이러한 시도는 현대미술에 대한 경험과 기본 식견이 부족한 일반관객들이 서로 다른 지리적·문화적 배경과 세대차 등에도 불구하고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는 특정한 주제와 실험적 현대미술이라는 매개장치를 이용해 각각의 눈높이와 취향과 욕구를 반영한 우리시대 문화의 현장을 펼쳐낸다는 점에서 가히 파격이라 할 만하다. '전문성'이라는 문화권력과 지식을 앞에 내세운 한 영향력의 행사자, 생산자 또는 작가의 일방적 독재가 관행화 되어온 지금까지의 문화구도에 전면적인 쟁의를 일으키려는 것이다.

문제는 피동적 자세에 젖어 있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본대상을 추출하고, 그들을 예술현장의 중심마당으로 이끌어내고, 그들의 문화적 속내를 예술이라는 장치로 멋지게 꾸며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물론 아마추어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프로는 업을 삼고 사는 사람답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 주는 것이 뒤집기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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