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 얼굴'닮아가는 칼바위
'큰바위 얼굴'닮아가는 칼바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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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 산이야기(25)-오봉산(392m·전남 보성)>


열차여행은 농촌에 고향을 둔 사람들에게는 특히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향의 정취에 흠뻑 빠져든다. 올 여름, 지리지도 많았던 빗속에서도 의연하게 고개를 내민 벼들이 가을을 재촉한다. 밭에서는 주렁주렁 열린 고추가 붉은 색을 띠고 있다. 간간이 보이는 흰색과 보라색의 도라지꽃만이 가는 여름을 아쉬워한다. 잠자리가 날아다니며 가을을 부르는 모습이 천진스럽다.

이런 모습의 들녘은 바라만 보고있어도 배가 부르다. 풍성한 마음은 봄부터 흘린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 때쯤이면 우리 집 논배미에서 익어 가는 벼를 보면서 그렇게 기분 좋아하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워진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에 내 가슴은 항상 풍요롭다.

기차는 보성역을 지나 어느새 득량역에 도착해 있다. 득량역은 시골 역치고는 무궁화호가 정차할 정도로 큰 역이지만 승객이 거의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승객 없는 역 대합실의 모습은 활력 잃은 오늘의 농촌현실을 반영한다. 득량역을 빠져 나와 택시를 탄다.

택시기사의 주름진 얼굴 너머로 득량의 넓은 들판과 작은오봉산(284m)이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오봉산의 삐죽 튀어나온 바위가 인상적이다. 오봉산에 접어들자 계곡주변으로 병풍처럼 펼쳐지는 암벽하며 웅장하게 바라보이는 칼바위가 나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학이 나래를 펴듯, 가야금소리 들리듯



바위와 너덜이라는 무뚝뚝함 앞에 갑자기 유연한 폭포 하나가 등장한다. 윗부분이 보이지 않는 폭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숙한 곳으로부터 비밀스런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폭포는 위에서 내려보면 폭포로서의 신비로운 느낌이 반감된다.

몸을 비틀면서 빠져 나온 물줄기는 굽이치면서 하얀 물보라를 쏟아낸다. 한 갈래로 내려오다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폭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날개를 펼치려고 하는 학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맑고 고운 가야금 연주를 듣는 듯하다.

폭포수에 손을 담그고 나서 오봉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유난히 넓적하고 얕게 쪼개져 있는 돌들이 눈에 많이 띤다. 그도 그럴 것이 오봉산은 한때는 주민들의 생계수단이 될 만큼 질 좋은 구들이 많이 나오던 곳이었다.

정상에 올라서자 몇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이 시원하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망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남쪽으로 득량만과 고흥반도가 아기자기하다. 고흥반도에 솟은 팔영산, 마복산, 천등산 같은 산들이 바다에 떠 있는 돛 같다. 동쪽으로 보이는 칼바위와 주변 암릉이 득량만의 바다와 득량들판을 배경삼아 풍경화 한 폭을 만들어낸다. 득량만에 떠 있는 득량도라는 작은 섬이 정답게 다가온다.

붉은 청미래덩굴 열매에 가을 실감


서쪽능선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칼바위가 칼처럼 날렵하다. 그리고 고슴도치가 몸을 쳐들고 있는 향상이다. 칼바위 앞의 340봉은 칼바위가 지향하고자 하는 '큰바위얼굴'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자연의 모습은 신비롭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340봉을 이루고 있는 바위의 60cm 정도 폭으로 갈라진 사이를 빠져나가니 칼바위가 정면으로 등장한다. 340봉을 이루고 있는 바위는 천애절벽을 이루고 있고 그 앞으로 칼바위가 웅장한 자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칼바위는 20m 쯤 직벽으로 솟았다가 모자의 차양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부채꼴을 이루면서 끝이 뾰쪽하여 신비로와 보인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에서는 흥이 절로 난다. 그러나 길은 점점 희미해지고 나뭇가지나 청미래덩굴 같은 것들이 자꾸만 길을 가로막는다. 길은 끊어졌다 희미해지기를 반복한다. 전라도 지역에서 맹감이라 불리는 청미래덩굴 열매는 어느덧 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오봉산 주차장(30분) → 용추폭포(30분) → 정상(50분) → 340봉(10분) → 330봉(40분) → 해평저수지 (총 소요시간 : 2시간 40분)
-. 제2코스 : 오봉산 주차장(30분) → 용추폭포(30분) → 정상(50분) → 340봉(30분) → 오봉산 주차장 (총 소요시간 : 2시간 20분)
▷교통
-. 보성과 벌교간 2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득량으로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득량면 소재지에서 2∼3분만 달리면 오른쪽으로 오봉산(용추폭포) 이정표가 있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가면 해평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 광주-보성간 직행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있고, 보성에서 득량으로 가는 군내버스는 1일 10회 운행된다. 득량면소재지에서 오봉산으로 가는 버스는 없다. 득량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6,000원 정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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