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곧 헤맴”
“소설은 곧 헤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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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64)에게 소설은 여전히 더듬이를 곧추 세우고 떠나야 하는 ‘밤길’같은 여정이다. 인간의 삶이 완성이 없는 끝없는 과정의 연속이듯 그에게 소설은 ‘완성태’가 없는 시지프스의 ‘영원한 바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지프스가 신들의 세계를 엿보고 참견했다는 이유로 ‘하늘이 없는 공간과 측량 할 길 없는 시간’에 던져져 싸우도록 운명지어진 것처럼 그 역시도 현실과 역사를 붙들고 씨름해야 할 팔자를 타고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이청준이 이즈음 ‘신화를 삼킨 섬’(전2권·열림원)을 통해 현실과 역사라는 ‘현실태’를 뛰어넘어 신화(또는 넋)를 새로운 소설적 화두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얼굴에 시지프스의 운명이 겹쳐지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청준에게 ‘꿈과 힘’은 현실을 운영하는 요소이며 ‘꿈’이 더 나은 삶을 표상하는 이데올로기라면 ‘힘’은 추진동력으로써 권력을 의미한다. 이 두 요소가 현실을 이끌어 가는 양대 수레바퀴이며 그 방향키는 ‘역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청준은 “우리문학이 현실과 역사라는 ‘현실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동안 공동체를 지배해 왔던 신화(=넋)의 세계와 정서를 담는다면 비로소 제대로 된 소설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같은 의미에서 그의 신작 ‘신화를 삼킨 섬’은 여러 모로 주목을 받는 작품이다. 이번 신작이 이청준 문학전집 전25권(열림원)이 완간된 시점에서 출간된 것도 그렇거니와 그 스스로가 소설 구상의 출발점을 ‘4·3사건’이 아닌 ‘넋’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1965년 등단작 ‘퇴원’이래 40년 가까이 도회와 시골의 삶 사이에서 ‘떠남과 되돌아 옴’을 반복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시원인 ‘신화(=넋)’의 영역으로 소설적 지평을 확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드디어 그의 소설 속에서 현실과 역사가 신화와 함께 버무려지기 시작한 것. 이 같은 소설적 형상화를 위해 선택된 곳이 제주도다. 이 통곡의 섬이야말로 이념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간 곳으로 씻김굿이라는 제의를 통해 신화와 접속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현실과 역사 넘어 신화의 세계 소설적 화두로
최근 신작 ‘신화를 삼킨 섬’ 새 출발점 주목
작가에게 창작은 자기 삶을 확인해 가는 과정


그렇다면 이청준에게 과연 소설은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소설은 허구를 잘 꾸며 독자의 고된 삶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그에게 소설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해서 독자가 지닌 영혼의 영토가 넓어져 가게 만드는 것이다. 소설은 영혼과 삶, 인간의 의식에 융통성 있는 활력을 부여해 뭔가에 잘 견디게 하는 그런 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말이 너무 무겁단다. 웃음이 그리운데 말의 경직성 때문에 끝없이 헤매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식 속에 상충하는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정의라는 이중적 잣대가 그 주범이다. 이는 결국 소설 속에서 ‘허위의식’을 잉태하기 마련이라는 것. 특히 모든 것이 노출된 정보시대에 문학적 은폐가 불가능한 것도 작가들을 헤매게 하는 요인이란다. 하지만 그는 헤맴을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헤맴이야말로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만큼 헤매고 더듬고 했으니 되겠다 싶은 것도 없다. 소설은 끝내 끝장을 볼 수 없는 작업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청준은 또 우리 시대 지식인들이 자기검열에 철저하다고 말한다. 시대상을 반영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 그에게 소설은 완전한 허구가 아닌 실재의 반영인 만큼 소설은 역사의 상처를 견뎌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소설을 쓸 때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검열보다 오히려 자기모방이라고 했다. 작가에게 창작이란 전인미답의 세계를 개척하며 자기 삶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적 창조성을 높이 평가한다. 문학적 운동성(=반복성)은 단지 사회적 상상력을 확대시킬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7∼8년의 시골 체험에서 자기소설의 많은 것을 빚진 바 있다고 술회했다. 그의 소설적 모티브는 유년기의 남루한 시골의 삶에서 윤기 있는 도회적 삶으로의 ‘망명’과 결국 도회에 ‘망명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배신감과 분노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회적 문명에 대한 필요성과 시골적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 속에서 떠남과 되돌아 오는 것을 반복하며 이 양면성을 통일시키려는 노력이 그의 일관된 문학적 행로였다는 것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소설의 유용성은 죽음을 지연시키며 삶을 지탱시킨다.”
이청준, 그가 현실과 역사를 바탕으로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 줄 생명수 같은 소설적 유용성이 벌써부터 목마른 갈증으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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