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고 근엄한 천년송 와운(臥雲)에 휩싸이고
곱고 근엄한 천년송 와운(臥雲)에 휩싸이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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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 산이야기(24)-지리산 와운골 도솔암(1,586m·전북 남원·경남 함양)>


지리산의 여름이 싱싱하다. 울창한 활엽수가 활력 넘치고 갖가지 야생화가 아기자기하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시원하다 못해 장쾌하다. 지리산은 이렇게 한 여름을 만끽하고,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은 지리산의 청량한 기운에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는다.

뱀사골로 진입하여 계곡 물소리에 발길을 맡긴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계곡은 수많은 옥구슬을 만들면서 우렁차게 흘러간다. 매끄러운 바위와 푸른 소들은 물길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흐름'이 있기에 '맑음'이 유지되는 것일 터. 그래서 부단한 변화를 통하여 자신의 맑은 정신을 유지해 가는 사람의 삶은 아름답다.

'숲속음악회'에 초대받다


뱀사골의 물소리와 주변 숲에서 내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화음을 맞춘다. 뱀사골은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모습 같다는 요룡대(搖龍臺)에서 와운골과 만난다. 천년송이 늠름한 자태를 드러낸다. 마을 옆 능선에 올라 천년송(千年松) 앞에 선다.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6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이 무려 12m에 이르는 이 소나무는 구름도 누워지나간다는 와운(臥雲)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천년 세월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천년송의 모습에 장엄함을 불어 넣어주고, 아름다운 예술품이 되도록 하였다. 일생을 아름답게 살아온, 그래서 곱게 늙은 선비의 근엄하고 맑은 모습이 천년송에서 풍겨 나온다.

와운마을은 반선에서도 1시간 가까이 산 속으로 걸어 들어와야 만날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마을이다. 이러한 와운마을에서 전망이 트이는 것이라곤 하늘밖에 없다. 마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2∼3분 걷다보니 계곡을 건너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나를 안내한다. 와운골 능선 길은 확연하게 나 있기는 하지만 고속도로처럼 넓게 뚫린 다른 등산로에 비하여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아 그윽하다.

하늘 보기가 어려울 정도의 울창한 숲 하나만으로도 숭엄한 기운이 감도는데, 자욱하게 낀 안개로 하여금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몇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 아래에는 조릿대 숲이 자리잡고 그 사이에 하얀 면사포 같은 안개가 감싸고 있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댓잎에 부딪쳐 나는 소리는 한 편의 음악이다. 여기에 바람소리, 멀리서 들릴 듯 말 듯 다가오는 물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합쳐져 협주곡이 된다. 아름드리 나무와 조릿대가 무대를 꾸미고, 안개가 안무를 하는 '숲속음악회'의 관객은 내가 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활엽수일색의 숲은 아름드리 전나무, 구상나무, 주목으로 바뀐다. 하늘나리, 비비추, 모싯대 같은 야생화도 아름답게 피어있다. 연하천산장 뒤편 헬기장에 도착하자 사람소리로 왁자지껄하다. 오랜만에 듣는 사람소리라 보고싶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연하천산장에는 점심을 먹는 산행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도솔암 스님은 결제 중


연하천산장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최신식 건물로 지어진 다른 산장에 비하여 시설은 낙후하지만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연하천산장이 나는 좋다. 산장주변에는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샘터 옆에서는 분홍색으로 핀 둥근이질풀이 향기를 품어준다.
자주 찾는 산이지만 지리산은 오늘도 아버지처럼 근엄하고 어머니처럼 자애롭다. 그래서 나는 지리산을 찾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다. 삼정산으로 통하는 능선길을 벗어나자 급경사 내리막이다. 음습한 비탈길을 벗어나자 양지바른 땅에 조그마한 암자가 둥지를 틀고 있다.

'결제중입니다-출입을 금지합니다'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사립문이 굳게 잠겨 도솔암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음력 4월 15일부터 백중인 7월 15일까지 석 달간 외부출입을 일체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하안거(夏安居) 중인 모양이다. 도로도 나 있지 않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산 중턱의 가난한 농가 같은 모양의 도솔암에서 오히려 선풍(仙風)이 느껴진다.

크고 번드르르한 요즘 절과는 달리 도솔암은 가난함 속에서 청정하고 신성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오는데, 하안거를 마치고 내려가는 스님의 발걸음 마냥 가볍기만 하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반선(50분) → 와운마을(2시간 30분) → 연하천산장(10분) → 삼각고지(1시간 30분) → 도솔암(30분) → 영원사 도로(30분) → 양정마을 (총 소요시간 : 6시간)
-. 제2코스 : 반선(30분) → 탁용소(1시간) → 병소(2시간 40분) → 화개재(30분) → 토끼봉(1시간 30분) → 연하천산장(2시간) → 와운마을(40분) → 반선 (총 소요시간 : 8시간 50분)
▷교통
-. 88고속도로 지리산교차로를 빠져 나오면 인월이다. 인월에서 60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산내면 소재지 도착 직전에 뱀사골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달리면 반선에 도착한다.
-. 남원시 인월면 소재지에서 뱀사골 가는 버스가 1일 26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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