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으로 본 헌법의 역사 '대한민국헌법'
풍경으로 본 헌법의 역사 '대한민국헌법'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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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이라는 은박 글자의 단정함에 눌려, 눈동자에 힘을 주었다. 법 서적은 한자어가 많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야 하는 책이 아니던가. 책 날개를 열자 큼직한 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1987년 7월, 우리들의 이한열이 이 땅을 떠나던 날의 사진이었다.

‘평범한 법서가 아닐 것 같다’고 예감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대한민국의 풍경과 헌법을 버무려 빚은 ‘특이한 책’이었다. 난해하고 딱딱할 거라는 고정관념이 일순 무너졌다.

편집자들이 논리를 배제하고 골랐다는 60여장의 사진이 예사롭지 않았다. 위성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와 제주도의 푸른 보리밭, 강릉 남대천의 야경에서, 늙은 여인의 등에 찬물을 부어주는 촌로와 판문점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남녘 처녀들을 훔쳐보는 북녘 총각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연이 담긴 영상을 감상할 수 있어 흡족했다.

시원한 레이아웃과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의 색지, 태극기의 네 괘가 잘 어우러진 북 디자인은 탄성을 자아냈고 책장의 밑단에 붙인 낱말풀이는 어찌나 친절하던지 빙그레 웃음이 돌 지경이었다.

학교를 떠난 지 십 수년만에 헌법을 본 소감은 ‘법은 정말 그럴 듯하고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헌법은 법의 체계적 기초로서 국가의 조직, 구성,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최고 법규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헌법을 잘 알지 못한다.

1970년 무렵 밤마다 졸린 눈을 부비며 ‘근로기준법 해설’을 독학했던 전태일 열사는 법이 있어도 법을 몰랐으니 ‘바보들’이라고, 봉제노동자 모임이름을 ‘바보회’라 지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바보’라는 비유로부터 자유로운가. 헌법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나는 ‘바보’라는 낱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내 무심함은 헌법정신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아아, 나는 2000년 신년 새벽에 찍었다는 신림동 꼬방동네의 설경이 1970년대쯤에 봤던 마을의 설경인 줄 알았다. 2002년 광화문 교보문고 앞을 지나는 만물장수가 유년에 시장통에서 만났던 아저씨인 줄 알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대였던 2000년 11월, 용산역 화장실에는 라디에이터 위에서 잠든 사나이가 있었다. 아아.

돈이 제 아무리 많아도 인간의 가치와 고통에 대해 사유할 줄 모르는 나라는 문명국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헌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그것이 삶 속에 뿌리내리도록 애쓸 때, 우리가 꿈꾸었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복지사회는 마치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다.

그 해 6월엔 눈물 줄줄 흘리며 ‘민주쟁취’를 외쳤을 터이고 아직 ‘그 약속’을 잊지 않았을 여섯 편집위원 송성재, 박영률, 류이인렬, 정주하, 백욱인, 이석태님에게 ‘시냇물 같은 소주’를 부어 드린다. ‘우리의 약속, 6월 헌법’을 위하여 건배!! (류이인렬 외·224쪽·9800원·박영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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