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읽기-Kinotopia를 꿈꾸는 도시, 로카르노
세계문화읽기-Kinotopia를 꿈꾸는 도시, 로카르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위스의 로카르노는 인구 약 1만이 갖 넘는 작은 도시이다. 분명 스위스 영토이지만 스위스가 다민족 다언어 국가인 것을 상기시켜 주듯 이탈리아어를 쓰는 이탈리아 문화권에 속해 있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로카르노의 남쪽은 이탈리아와 국경을 두고 있어서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이 강한 이 곳은 부자나라 스위스에서도 경제적으로 비교적 낙후된 지역이라고 한다. 이곳 로카르노는 영화제 때문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영화제말고도 예로부터 휴양지로서 명성이 자자한 곳이기도 하다.

97년쯤으로 기억되는데, 난 소문으로만 듣던 로카르노를 직접 볼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당시 방송 프로덕션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로카르노 영화제를 취재하기 위해 파견될 취재팀에 들었던 것이다. 파리에서 일을 마치고 스위스 항공의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흥미로운 경험을 할수 있었다. 그것은 승무원들의 안내방송이었다. 기장이나 여승무원들이나 모두 4개국어로 한다는 것. 스위스가 다민족 다언어 국가인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을 미소와 더불어 상기시켜 주었다.

신인 감독의 작품이나 신작 위주의 영화 소개하는 국제영화제

짧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4개국어로 방송한다는 것을 한번 연상해보라. 베른에서 루가노(로카르노를 비행기로 가기 위해서는 인근 루가노 공항에서 내려 다시 자동차로 가야한다)까지 가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경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풍경화 한폭 그 자체였다.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 꼬모 호수와 마조레 호수, 곳곳에 수 많은 점들이 찍힌 듯 작은 집들과 포도농원들..., 루가노와 로카르노의 자연환경은 도심 속의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 매일 똑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던 나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진짜로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일이 기다리고 있을줄이야.

로카르노 영화제 지난 1946년 1회를 시작으로 금년에 56회를 맞이하게 된다.(51년과 56년은 영화제가 열리지 않았다) 영화제 주관은 스위스 영화협회가 주관하고 있으며 신인 감독의 작품이나 신작위주의 영화를 주로 소개하는 영화제이다. 영화제의 방침이 그렇다 보니 자연 제3세계 영화나 아시아권 영화가 다른 영화제에 비해 비교적 많이 소개되는 편이다. 로카르노에 도착하고 보니 당시 우리나라에 서서히 알려지고 있었던 이란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회고전이 마련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겨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존재가 알려지고 있던 것에 비한다면 로카르노는 벌써 그를 대가로서 인정하고 회고전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철저히 시민중심형의 영화제이다. 주관은 스위스 영화협회가 하지만 실제적으로 영화제를 움직이는 동력은 지역주민들이었다. 매년 8월에 열리는 영화제는 유럽과 세계의 곳곳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더불어 한마당의 축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인구 약 1만명, 작은 소도시이지만 거리 곳곳마다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작은 읍내 정도의 도시규모는 영화제를 개최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영화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 거리가 비교적 짧고 메인 상영관이 그란데 광장을 중심으로 장방형으로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시간 분배를 할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영화 축제의 무대가 된다는 것이다. 당시에 느꼈던 분위기는 시민들이 영화제를 기꺼이 즐기고 체험한다는 것이다. 식당과 숙박업소 외에는 거의 문을 닫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식당과 숙박업소 외에는 거의 문닫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대도시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긴 하고, 각 영화제마다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순 없지만 어쨌거나 로카르노 영화제는 시민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인 상영관이자 야외상영관인 그란데 광장 같은 경우는 스크린을 중앙으로 양 옆에 위치한 중세기 혹은 17C세기 이후의 고색창연한 문화재급 건물들이 자연스레 놓여 있어 영화를 보는 동안 마치 오페라좌나 뮤지컬의 무대 세트 안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외형적인 조건보다 더욱 맘에 다가왔던 것은 영화제에 참여하는, 혹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자세였다. 젊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와는 달리 다양한 연령층들이 영화제에 모여들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 보다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더욱 눈에 띄었고 노천카페나 식당에서 열심히 영화제 스케줄표를 보며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영화제를 만끽하고 있었다. 당시 처음으로 외국 영화제를 접한 나로서는 로카르노가 영화광, 매니아들을 위한 하나의 Kinotopia처럼 비쳐졌다. 부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이미 배용균 감독이 이곳에서 인기몰이를 한 뒤라 영화제 취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당시 우리 취재 팀의 최고 이슈는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장 뤽 고다르였다. 고다르는 모두 알다시피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스위스로 귀화한 사람이다. 그러나 고다르는 우리의 맘과는 달리 영화제 기간 동안 개막식 날 딱 한번 얼굴을 비치고 영화제가 끝날 동안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끊긴 상황이라 영화제 운영팀도 속수무책일뿐 어떤 기대도 갖지 못했다.

물론 스위스 방송 팀으로부터 고다르의 공식 인터뷰 테입은 입수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실제 모습과 육성을 우리의 카메라로 담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영화제 기간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운영사무실의 동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영화제가 거의 끝나 가던 중 우리 취재팀은 뜻하지 않는 수확을 얻을수 있었다.

영화제 자체,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영화제인 듯한 느낌 받아

볼리비아 영화감독이자 진보적 영화집단인 우카마우를 이끌었던 호르헤 산히네스 감독의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로부터 산히네스 감독의 근황과 신작의 정보를 들을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산히네스가 걸어왔던 영화세계, 삶의 역정, 라틴아메리카 영화인으로서의 전략들을 들었던 것은 제3세계 영화를 공부했던 나로선 더할 나위없는 큰 수확이었다. 산히네스 팀과의 만남은 내 삶의 방향을 크게 바뀌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로카르노가 내게 준 큰 선물인 것이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영화제와 도시가 유기적으로 구성된 듯한 느낌이었다. 도시의 어떤 특정한 지역, 혹은 일정기간 동안 영화제를 마련하는 개념이 아닌, 영화제 자체, 도시자체가 하나의 영화제인 듯한 그런 느낌말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상당 기간의 내공이 필요한데 5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로카르노는 작지만 내실있는, 그러면서도 대중들과의 자연스런 호흡까지도 배려하는 영화제로서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지역에서 열리는 광주 국제영화제도 머지 않아 로카르노 못지 않는 신명나고 즐겁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용할수 있는 영화제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느 정도의 역경과 시행착오들을 극복한다면 충분히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보면서 영화제뿐만 아니라 지역 축제의 원형들을 보다 열린 시각에서 그려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로카르노가 했던 것처럼 모든 일의 중심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