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독서
읽지 않는 독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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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콤플렉스 많은 사람이 좋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딘지 빈 구석이 있어야 왠지 더 정감이 가는 법이다. 때로 그것을 애써 감추려는 모습을 보면 왠지 그 사람이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내 열등감의 원천이었던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나에 비해 키도 훌쩍 컸고 얼굴도 잘 생겼으며(실상 나 보다 키도 작고 얼굴도 아닌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어디에서 풍겨오는 자신감인지 하늘로 가는 계단 위에 서서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었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같은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던 녀석은 시골 촌놈인 나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으니, 밤이면 숱하게 쌓인 참고서 아래서 녀석이 말한 소설책들을 오기처럼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후에 기회가 돼서 그 책 이야기를 꺼내려 치면 녀석은 예의 시니컬한 눈빛으로 '그래'하며 넘겨버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읽고 있는 책의 표지에 박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제목을 본 순간 나는 한 치도 안 되는 스스로의 내공을 한탄하며 조용히 칼을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니체의 그 책을 나는 2년 쯤 전에야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의 내용을 녀석이 다 이해했을까 싶지만, 어쨓든 이후로 내겐 습관 하나가 생겼으니 녀석에게 고마워할 일이다.

그 습관이란 누군가 '너 혹시 그거 읽어 봤냐?'하며 물어본 책들은 며칠 후 어김없이 내 책상 위에 놓여지곤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 그때 다 읽는 건 아니다. 내내 묵혀두다 어쩌다 생각나면 몇 장씩 읽다 다시 책장에 꽂아놓고서는 또 한동안 잊어버린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렇게 다 읽지도 못한 책들이건만 단번에 읽어버리는 책들보다 훨씬 더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열등감이 선물하는 남다른 애착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 휴지의 시간동안 그 책과 내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필연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책상 위에 그런 책들이 몇 권 놓여 있다. 하여 이참에 아직 읽지 않은 도서 목록을 정리해볼까 한다.

황동규,『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 - 근래 눈이 가는 시집들이 뜸하다. 이럴 때 가장 안전한 시집 선택의 기준은 검증된 작가들의 근작들을 고르는 일이다. 황동규의 시를 읽을 때면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툭툭 튀어나오는 생경한 단어들과 날카로운 수식들은 대충 의미를 때려 맞춰가며 책장을 넘기기엔 고통스러웠을 시인의 정신 앞에 왠지 죄스런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후배가 선물해 주었는데, 며칠 째 가방에서 제 존재를 망각해가고 있다.

박범신,『더러운 책상』, 문학동네. - 작가의 이름만 보고 바로 구입한 책이다. 며칠 전 어지럽고 '더러운 책상'을 정리하다가 깨끗하게 놓여진 이 책을 다시 발견 했다. 165페이지에 책갈피가 꽂혀 있다. 잊혀졌다 생각했던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어느 사랑처럼, 그토록 순수하고 악마적이었던 주인공의 영혼이 다시 떠오른다. 오늘 밤 몇 장을 더 넘겨야겠다.

성석제, 『인간의 힘』, 문학과지성사. - 잘 나가는 작가는 글 쓰는 속도도 잘 나가는지 눈만 떴다 하면 새 소설이 나와 있다. 요절복통이란 말은 소설에는 쓰지 않는 수식인 줄 알았다. 기분 울적하고 비 온뒤 햇볕이 낭창해서 낮잠이 쏟아질 때 웃고 싶어서 읽는다. 어쩌다 이번에는 조선의 선비를 주인공으로 할 생각을 했는지 잘 쓰지 않는 고어나 한문번역투의 문어들이 많이 사용돼서 다시 읽으려면 앞 부분을 다시 살펴야 하는 수고로움이 조금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그대로 강추!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문학사상사. - 솔직히 하루키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단편에는 간혹 시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TV에서 하도 들먹여서 그런지 『상실의 시대』에는 왠지 정이 안 간다. 그런데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서른 즈음의 나이에 조금 쑥스럽지만 2년 째 솔로인 내가 안 돼 보였는지 친구녀석이 소개팅을 시켜준단다. 그런데 소개받을 사람이 하루키를 좋아한다니 이 소설은 그 내용과 문학성을 떠나서 꼭 하루 속히 읽어야 한다.

스탕달,『적과 흑』, 범우사. - 그 이름은 다 알지만 읽지는 않는 것이 고전이라고 했던가. 대학시절의 어느 여름 방학 때 학교 도서관에서 이 세상의 고전을 모조리 다 읽어버리겠다는 개도 웃을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 때 목록에 올랐던 작품이다. 물론 목록에만 올랐다. 얼마 전 기회가 있어서 정말 재미있고 감탄하면서 읽다가 가슴이 아파서 덮어두었다.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과는 무관하지만 줄리앙과 레날부인의 사랑이 가슴을 찌르고 들어와 덮어 둘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말 못한다. 젠장, 책 표지도 붉은 색이다.

칸트,『판단력 비판』, 전영사. - 얼마 전 칸트의 미학이론에 대한 2주 짜리 세미나가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은 서문만 복사해서 보다가, 갑자기 무슨 학구열에 불탔는지 한자번역이 즐비하고 한 시간에 열 장 넘기기도 힘든 이 책을 사는 무모함을 저지르고 말았다. 칸트 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숭고'라고 했던가. 이 책을 들고서 나는 한 동안 '숭고'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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