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장…수사 착수-‘참배저지’ 파문 확산
월장…수사 착수-‘참배저지’ 파문 확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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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18분 지각>

현직 대통령이 국가 기념행사에 지각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5·18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국립 5·18묘지를 찾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로 제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 한총련 소속 대학생 500여명은 이날 오전 5·18 구묘역 참배를 끝낸 후 5·18묘지 입구로 몰려가 ‘방미 굴욕외교 노무현 규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점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경찰들이 극심한 몸싸움을 벌여 서울대생 서재영군이 실신하기도 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정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묘지에서 600m 떨어진 후문을 통해 기념식장에 입장해야 했다. 이로 인해 당초 오전 11시에 계획됐던 기념행사가 18분이나 늦어지는 등 차질을 빚었다. 기념행사가 끝난 후에도 노 대통령은 다시 후문을 통해 행사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노 대통령의 묘지 입장 후 학생들이 자진해산 하려 했지만 경찰들이 경호를 이유로 포위를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경찰도 월장

5·18기념행사가 끝난 후 묘지를 빠져나가려던 여야 정치인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대학생들과 경찰들에 의해 정문이 가로막혀 차량통행이 전면 금지된 것. 한동안 묘지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정치인들이 ‘탈 묘지’를 위해 고안해낸 것이 바로 월장.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니 이것저것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정동영 신기남 천정배 김영환 김성호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월장을 감행했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태영 전남도지사도 담을 넘은 뒤 ‘시민의 소리’ 차량을 얻어 타고 전남대 오찬장소인 본관 용봉홀로 간신히 이동할 수 있었다. 민주당 김모 의원은 월장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쓰지 말아 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태성 기자

◎노 대통령 방미 평가 논란

노 대통령의 방미행보를 두고 ‘친미굴욕 외교’라는 주장과 ‘실리외교’라는 논란이 분분했다. 이날 5·18묘지 입구에서 점거농성을 벌인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노 대통령이 최근 미국방문을 통해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의 북핵 소동에 동조하며 한미공조라는 틀에서 6·15 공동선언도 휴지조각으로 변질시켜 버렸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또 “민족의 자주권을 남의 손에 맡겨 버리고 한반도를 미국의 전쟁음모에 빠뜨린 외교 결과를 망월참배와 전남대강연회를 통해 사대성을 숨기고 개혁성을 포장하려 하고 있다”며 “계획적이며 음모적인 이번 광주방문은 광주에 대한 모독이며, 오월영령을 기만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전남대 특강에서 “미국이 너무 빨리 무력수단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막는 것이 1차적 목표였다”며 “비판과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현재 한미관계를 우호·공조관계로 가져가야 할 현실 위에 있다”고 ‘굴욕외교’ 주장을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주한미군 얘기만 나오면 (국민과)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 정치에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한미관계 잘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대서 2라운드 공방 계속

국립 5·18묘지서 한차례 공방을 벌였던 경찰과 한총련 학생들은 전남대에서 2라운드 공방을 계속했다. 5·18묘지에서 한총련 학생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던 터라 경찰들의 경비는 더욱 삼엄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12시30분부터 대강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대통령 경호실과 경찰측이 관광버스와 학교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쳐 학생들의 진입을 막았다.

©김태성 기자

노 대통령이 전남대에 도착해 식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학생들이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식당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특강은 별다른 물리적 충돌 없이 진행됐다. 대통령의 특강은 봉지 앞과 대강당 앞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노 대통령의 특강이 막 시작되자 학생들은 교내방송을 통해 ‘노 대통령의 대미굴욕외교 ’를 규탄하는 내용을 방송했으나 학교측에서 전기 스위치를 차단, 불발에 그쳤다.

◎노 대통령에 대한 애증의 두 얼굴

노 대통령의 이번 광주방문에는 애증의 그림자가 극명하게 교차됐다. 지난해 대선 때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던 대학생들이 ‘친미외교’를 빌미로 비판적 위치로 돌아선 반면 노무현 정부 탄생의 주춧돌이었던 노사모가 여전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

이 같은 모습은 5·18묘지와 전남대 등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 지속적으로 나타났으며 노 대통령이 전남대 특강을 끝내고 나오는 순간 정점에 달했다. 전국에서 모인 노사모 회원들은 ‘노무현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전남대를 떠나는 노 대통령을 갈채로서 배웅한 반면 시위학생들은 시종 가시도친 발언으로 가파른 대치를 계속했다.

노 대통령이 전남대를 떠난 후 위태하던 시위학생들과 노사모는 결국 한바탕 설전을 치렀다. 시위 학생들이 노사모 주변에 몰려들어 “노 대통령을 바로 세우려면 올바른 비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 이에 대해 노사모 회원들은 “한총련은 한총련의 입장이 있고 노사모는 노사모의 입장이 있다”며 “서로의 입장차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양자 사이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으며 서로 얼굴을 붉히며 몸싸움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다.

◎검 경 한총련관련자 수배

한편 한총련학생들의 이번 '저지'사태와 관련, 그간 한총련 수배학생들의 수배해제를 적극 검토하는 등 한총련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견지해온 정부가 강경입장을 천명하고 나서 '한총련합법화'추진 분위기도 상당부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강금실 법무장관과 한총련 문제에 대해 유보적 자세를 보여왔던 대검 공안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등은 19일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한총련으로서는 이번 행위가 합법화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이와관련, 전남지방경찰청은 19일 대통령의 행사장 진입을 방해한 혐의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 정재욱(23.연세대 총학생회장),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남총련)의장 윤영일(25.전남대 총학생회장), 서울대 2학년생 서재영(22)씨 등 대학생 3명을 사법처리하기로 하고 신병확보에 나섰다.

또 경찰은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인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처장 오명남(40.광주북부지부장), 전공노 해남군지부장 신화균(36), 신안군지부장 황재훈(37), 이경석(30)대우캐리어 전 노조위원장 등 4명에 대해서도 신병 확보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이들 7명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한 뒤 출석에 응하지 않을 경우 사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전원 검거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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