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하는 ‘5월 광주’
번지점프하는 ‘5월 광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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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NHK를 아시나요’
지난 2000년 5월17일 광주의 한 술집이 태풍의 진앙지로 급부상 했다. 5·18 전야제가 열리던 그 시간, 민주당 ‘386 의원’ 8명이 행사장 인근에서 술자리를 가진 것이다. 물론 이날 술자리에 참석한 의원 그 누구도 그토록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수구언론의 ‘386 물어뜯기’와 성난 네티즌들의 ‘마녀식 여론재판’으로 이들 ‘386 의원’들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급기야 사과성명까지 내야하는 수모를 당했다.

당시 한 네티즌은 민주당 여론광장에 올린 ‘새천년 룸가라오케 의원 여러분’이라는 글을 통해 “그대들 지하에서 통곡하는 민주영령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누구 덕에 당상에 앉았다고 벌써 꼴 갑을 떠는가”라고 호되게 질책했다.

엄숙주의와 역사의 가벼움 사이 자리 못잡아
미인대회 본선후보 망월묘역 참배 ‘눈감아’


©김태성 기자
또 다른 네티즌도 “광주에서 원통하게 쓰러져간 그 영혼들을 위로하러 가신 당신들이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이다니…”라며 분개했다. 특히 이날 술자리를 주선한 김태홍 당선자에게는 광주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 때문에 김 의원은 아직까지도 ‘NHK’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5·18의 엄숙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3년 5월9일. 5·18 국립묘지에 늘씬한 미녀들이 나타났다. 미인대회(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본선에 오른 56명의 후보들이 참배를 위해 5·18묘지를 찾은 것이다.

순수하게 참배목적으로 5·18묘지를 찾았다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이번 방문목적은 미인대회 행사홍보라는 ‘계산된 상술’임이 자명하다. 이들은 지난 7일에도 경기도 광주시 소재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찾아 홍보효과를 극대화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제삼는 언론이나 단체는 없는 것 같다. 5·18기념재단이나 유관단체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국립묘지에 유공자를 참배하러 온다는데…”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광주여성민우회 등 일부 여성단체가 반대시위를 전개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미인대회 반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국회의원과 미인대회 후보는 급이 다르다는 것인지. 아니면 3년 동안 5월의 엄숙주의를 주창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관용의 화신으로 거듭나기라도 했단 말인지. 술자리와 성의 상품화를 위한 홍보도구화 중 어느 것이 더 큰 문제인지. 엄숙주의와 역사의 가벼움 사이에서 혹시 광주의 5월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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