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다른 시선, 그러나 같은 방향
여섯 개의 다른 시선, 그러나 같은 방향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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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광주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전주에서는 자유, 독립, 소통을 슬로건으로 30여 개 국가의 170편 영화가 축제를 벌이는 네 번째의 국제영화제가 열렸다. 개막식 날 전국에서 몰려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로 입석까지 들어찬 전북대의 문화관 강당은 비 오는 날씨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올 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다큐멘타리, 독립 그리고 디지털 영화를 많이 준비해 놓고 있었다. 대안영화에 주목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컨셉답게 개막작품은 영화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을 떠나서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관심을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개막작은 영화의 형식이나 주제에 자기 성격이 뚜렷하여 '작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우리나라 여섯 명이 감독한 영화 <여섯 개의 시선 If You Were Me>이었다.

<여섯 개의 시선>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 지원한 영화라는 사실 말고라도 옴니버스식 영화가 부재한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특이할 만한 시도로 보여 졌다. 영화의 첫 번째 작품은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이고 이어서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 그리고 네팔 Nepal 까지 가서 촬영한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 편의 영화 모두 한국사회의 인권 문제를 대중적으로 환기시키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보이는데, 각각의 영화가 취하고 있는 형식미는 독특하면서도 맛깔스러워 보인다. 영화는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제국주의 식민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새끼 제국주의자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의 물리적이고 정신적 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총 13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대륙횡단>은 정신지체자의 삶의 매 순간이 그들에겐 얼마나도 전쟁과 같은 것인가를, 그리고 멀쩡한 신체의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무심하고 삭막한 눈길로 바라보는 가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에게 광화문 네거리는 광활한 대륙과 같은 것이며, 그래서 그 곳을 꼭 건너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그 신체적의 속박을 벗어나는 상징적인 의미로 말이다.

<얼굴값>이나 <그녀의 무게>는 미모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위계가 결정이 되고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해버리는 태도에 대한 섬뜩한 경고이자 풍자적인 영화이다. 노인의 성과 사랑에 대한 관심을 일으킨 <죽어도 좋아!>를 작년에 발표한 박진표 감독의 새 영화 <신비한 영어나라>는 영화를 듣고 있는 동안 우리 몸 안의 세포들이 괴로워할 영화이다. 카메라는 영어로 발표하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뿌듯하게 생각하는 젊은 부모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을 잠깐 들려주다가 병원 안을 들여다본다.

그곳에서는 한국인들이 제일 발음하기 힘든 알파벳 중의 하나인 R('알') 발음을 좋게 만들기 위해 어린 아들의 혀 밑을 두 차례나 칼로 째고 봉합하는 수술이 한창이다. 서양화와 근대화의 이름으로, 그리고 세계화의 이름으로 이제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그들의 신체에 식민 경험이라는 외상을 새겨 넣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의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의 신음에 관객의 몸에는 소름이 돋는다.

박진표 감독의 영화가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을 표상하는 것이라면,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코리안 드림'을 쫓다가 어딘가에서 그 길을 잃어 정신병원에서 6년 4개월 동안 갇혀 있었던 '찬드라' 라는 네팔 여성노동자에 관한 영화이다. 다큐멘타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생김이 한국인과 흡사한 '찬드라'가 정신병자로 오인 받아서 네팔로 다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네팔에서의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에서의 그녀를 둘러싼 공간은 상대방에 무관심한 차가운 흑백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녀가 돌아간 네팔은 따뜻함이 넘쳐나는 칼라의 축제 공간이다. 그녀의 마을 어귀에 걸려있는 깃발에 네팔 Nepal의 첫 글자를 따서 Never Ending Peace and Liberty (평화와 자유여 영원하라!)는 문구가 아주 강렬하다. 네팔은 못 사는 변방의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배려와 이해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런 감정은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었으리라! <여섯 개의 시선>은 다른 시선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너'와 나를 이야기 한 것이다. 영화란 불특정 다수의 관객의 무의식에 호소하여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매체이다. 짧은 단 한편으로도 타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영화의 폭발성이다. 그것은 내게 놀랍고도 희망을 주는 경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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