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목아지를 뿐질라불먼 안 되재이
말목아지를 뿐질라불먼 안 되재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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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는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는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나 목포에서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전라도 사람이라면 대개가 알고 있을 것이고, 설령 모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들어본 듯한 말일 것이다. 거기다가 요즈음 젊은 식자층 사이에서 농담처럼 번지는 말이 있는데, 장흥에서는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다.

장흥에는 참으로 쟁쟁한 문인들이 많다. 소설가로는 송기숙,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김해림 등이 있으며, 시인으로는 위선환, 조윤희, 김영남 등이 있다.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문단에 얼굴을 내민 숫자만도 백 명 가까이 되니, 다른 지역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흥에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비단 장흥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전라도 전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전라도는 정말 많은 작가와 시인을 배출한 곳이다.

장흥의 옆 동네인 보성에는 조정래가 있고, 문정희가 있으며, 강진에는 영랑이 있고, 해남에는 이동주가 있었고, 김준태, 김남주, 황지우, 고형렬 등이 있다. 범위를 넓히지 않고, 장흥 둘레만 대충 둘러보아도 이러한데, 전라도 전체를 들먹이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호사가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라도는 현대문학의 가장 중요한 산실임에 분명하다.

혹자는 전라도 쪽에 유독 문인이 많은 이유로, 정치 경제의 문제를 들기도 한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또 어떤 이는 전라도의 풍부한 생산물과 지형을 말하기도 한다. 그것도 어긋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라도 지역에서 수많은 시인 소설가가 배출된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전라도 방언이 지니는 풍부한 어휘력과 비유성에 있다고 본다.

문학의 산실 전라도 문인 많이 배출한 이유는

'속'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전라도에서는 '속창아리(소갈머리), 속창새기(소갈머리), 속창시(소갈머리) 등 다양한 말이 되어 쓰인다. 여기에다가 전국에서 쓰이는 소갈딱지나 소갈머리라는 말도 함께 한다. '-때문에'라는 말을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뜻으로 쓰이는 전라도 말로는 '-땀세' '땀서' '-땀시' '-땀시롱' -따울래' 등이 있다. 문제는 이 모든 단어가 한 자리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인데, 뜻은 같더라도 어떤 단어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말한 이의 성격이나 자리의 분위기가 다르게 드러난다.

전라도에서는 성질에도 머리가 있으며, 비위에도 대가리와 살이 있다. 성질이라는 말은 '성질머리'라는 말로 바뀌고 비위라는 말은 '비웃대가리'나 '비웃살'이라는 말로 바뀐다. 정신에도 머리가 있어서 '정신머리'가 되고, 염치에도 미제와 일제가 있다.

머리가 있는 모든 것은 동물이기 때문에 성질이라는 짐승과 정신이라는 짐승, 비위라는 짐승들을 상상하며 어린 시절의 나는 시간을 보내곤 하였는데, 이 많은 동물들 속에 낀 밴댕이나 도루묵마저도 물고기가 아니라, 관념어인 것으로 오래도록 착각을 하며 지냈다. 그래서 '밴댕이 속창시(창자)'나 말짱 '도루묵(농어목 도루묵과의 물고기)'을 직접 보았을 때는 웃음이 나왔다. 이전의 나는 '밴댕이 소갈딱지'에 나오는 밴댕이도 물고기가 아니라, 속 좁음을 나타내는 어떤 관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이건 성질이건 비위이건, 머리가 있는 것들은 관념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태를 지닌다. 설령 그것이 저마다의 머리 속에서 다르게 연상이 되더라도 그렇다. 그래서 '조 자석은 성질머리가 빌어묵게 생게 갖고는...... .' 식의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성질의 머리가 구걸을 해 먹게 생겼으므로, 성질의 허리나 다리가 어떻게 생겼든, 그 성질의 첫인상이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머리가 있으니, 꼬리와 다리가 있으리라. 흔히 쓰는 말로 '성질이 방방 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성질은 머리가 있는 성질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성질이 방방 뛴다는 말은, 성질이 풀밭을 달리는 말처럼 방방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을 표현한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구수한 방언 풍부한 어휘력 문학적 소재 많아

봄은 가장 먼저 오고 겨울은 맨 나중에 오는 지역이라서 일까. 전라도 말에는 생기 넘치는 표현들이 많다. 야무진 아이를 표현하는데도, 그저 야무지다고만 하지 않는다. '고놈 참 다글다글허니 야물딱지구마이.' 라고 하거나 '도글도글허다'고 하기도 하고, '또글또글허다'라고 하거나, '똑또구르허다' 라고 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야무지기로 소문이 난, 내 바로 위의 형은 하도 '또글또글허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기어이 '또굴이'가 별명이 되기도 하였다.

전라도에서 발달한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한국어를 음장(音長)언어라고 하는데, 이 음장이 가장 발달한 언어가 있는 곳이 전라도이다. '자네가 핑허니 갔다온담사 암시랑토 안 허재이. 하먼.'에서 보이듯이 '빨리'나 '금방'의 뜻으로 쓰이는 '핑'이라는 말의 생동감은 접어두고라도, '허재이'에서 보이는 '-재이'라는 말의 꼬리는 그 음장이 음악에 가깝다. 더구나 그 '-재이'의 '-이'가, 그저 '이'에서 끝나지 않고, '이잉' '이이잉'으로 끝이 날 경우에는 그대로 노래가 된다.

"찬은 벨 것이 웂는지라우. 숟꾸락 한나 엉거 갖고 끄니 때울라 불게라우." 오는 손님을 굶겨 보내는 법이 없었던 것이 전라도 인심이었던지라, 반찬은커녕 끼니 때울 양식도 변변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끼니 때 누가 오면,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이 말이 전라도말에서 자주 쓰이는 '-당께'나 '-응께'라는 말과 함께 쓰이면, '그랬당께라우' '혔응께라우' 식이 되는데, 무언가가 딱 분질러지는 듯한 '께'라는 발음과 계란 반숙의 노른자위처럼 부드러운 '-라우'가 합쳐져서 간이 딱 맞는 말이 된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는 한참(조선시대에 역과 역 사이를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두고 한참이라고 하였다.)동안 늘어지기도 하고, 염천에 콩깍지 터지듯 딱딱 끊어 퉁겨지기도 하는 것이 전라도 말인데, 이 말의 특장이 발달하여 된 것이 소리가 아닐까 싶다. 소리, 혹은 판소리가 전라도 지방에서만 유독 발달하였던 것은, 생동감이 넘치는 전라도의 말과, 풍류를 좋아하는 이쪽 사람들의 기질이 함께 한 결과일 것이다.

전라도 말에 귀 명창이라는 말이 있는데, 입으로 노래를 잘 하는 명창이 아니라, 한 번 듣고 그 소리의 값어치를 판단할 수 있는 귀밝은 사람을 뜻한다. 음식으로 말하면 미식가라 할 만한 사람들이 이런 사람인데, 이런 귀 명창이 전문가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 바닥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도 귀 명창이다 보니, 입맛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소리나 말 맛에도 까다로워서 어지간한 노래나 어지간한 글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곳이 전라도이다.

귀 명창이 많은 곳이라서 소리를 하여도 단조로운 것은 먹히지 않는다.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 등의 장단과 아니리(白:말)와 발림(科:몸짓)까지 멋지게 곁들어져야 비로소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귀 명창이 명창을 만든 셈이다.

풍류 유독 즐겨하는 남도 사람 기질과 맞물려

마찬가지로 비유가 탁월한 말을 일상에서 쓰는 사람들인지라, 어지간한 글에는 눈을 두지 않는다. 말 맛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인지라, 말의 간을 보고, 말의 매운 정도를 보고, 말의 양념 맛을 보고, 그 말 맛이 어떻다고 판단할 정도의 사람들이라서, 박자를 넣어도 엇박자 한 번은 넣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서, 글 한 줄을 읽어도 그 글의 맛을 귀신처럼 알아낸다. 그러다 보니 전라도에서는, 글을 쓰더라도, 최소한 장안을 떠들썩하게 할 정도라야만 글쟁이라는 말이 붙는다.

'말'에 머리와 꼬리가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말머리, 말꼬리, 말꼬투리 등의 말은 버젓이 사전에 등록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말의 머리나 꼬리뿐만 아니라, 말의 허리와 모가지도 있다.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말을 끊고 자주 끼어 들면, 전라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라고 말목아지를 뿐질라불먼 안 되재이."

말의 모가지를 나뭇가지 다루듯, 분질러버리기도 하고 잇기도 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말(언어)과 함께 살며, 그것을 다루는 일을 하는, 시인이나 작가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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