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땅의 부드러움을 품고 있는 산
백제 땅의 부드러움을 품고 있는 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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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 산이야기⑬-종남산(610m·전북 완주)


"송광사요? 순천에 있는 절 아닌가요?"
"전라북도 완주군에도 송광사가 있어."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 아내와 나눈 얘기처럼 송광사 하면 대부분 우리나라 3보 사찰 중의 하나인 순천의 송광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전라북도 완주에도 같은 이름의 고찰 송광사가 있다.

얼었던 땅이 녹고 모든 생물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농부의 마음도 바쁘다. 열심히 땅을 파는 농부의 바쁜 손놀림 속에는 건강한 땀방울이 맺혀있다. 송광사로 통하는 길에는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하천을 옆에 끼고 이어지는 소박한 이 길은 4월이 되면 화사한 벚꽃 길이 된다.

이러한 벚꽃 길은 송광사에 도착할 때까지 2km 정도 계속된다. 송광사 근처에는 아담한 마을이 있고, 그 옆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송광사 일주문이 계곡 건너편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송광사 아자형 범종루의 화사함


계곡가에 서 있는 느티나무 고목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산골마을 옆 평지에 자리한 송광사는 웅장하면서도 이웃집 아저씨 같이 친근하다. '종남산 송광사'라 쓰인 일주문을 들어서자 사천왕문이 기다리고 있다. 사천왕문 안에는 진흙으로 빚은 사천왕상(보물 제1255호)이 모셔져 있다. 절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사천왕상 하면 일반적으로 무섭고 위엄스러운데, 송광사 사천왕상은 오히려 따스하고 순진하다.

사천왕문을 돌아가니 대웅전, 지장전, 범종루, 관음전 등의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너른 대지 위에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건물 배치로 하여금 송광사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황량함을 지울 수 없다.

살랑대는 봄바람이 봄을 맞으러온 나그네의 가슴을 파고든다. 동네 뒷산 같은 평범한 종남산이지만 험하지 않은 바위지대가 가끔 나타나 변화를 준다. ©장갑수

하지만 정면으로 빛 바랜 단청의 대웅전이 웅장하고, 대웅전 앞의 범종루가 아름답다. 대웅전에 들기 전, 나그네의 발길은 우리나라 유일의 아자형(亞字形) 범종루(보물 제1244호)로 향한다. 대웅전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범종루에는 불전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달아두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양의 범종루는 유약해 보이면서도 현란하고 화사하다. 나는 이 아름다운 아자형 종루 앞에 서서 신명을 바쳐 건립한 목조 건축에도 불성(佛性)이 있음을 확인한다.

예불이 한참 진행중인 대웅전(보물 제1243호)으로 향한다. 팔작지붕의 크고 튼실한 대웅전 안의 진흙으로 빚은 삼불좌상(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의 거대한 자태에 눈길이 멈추어진다. 국내 소조상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송광사 소조삼불좌상(보물 제1274호)은 건물 내부 규모에 비하여 너무 커서 오히려 실내가 좁아 보인다. 하지만 이 삼불좌상은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에는 땀을 흘리는 영험함을 과시한다고 한다.

봄의 교향악을 들으며


대웅전을 돌아 오백나한을 모신 영산전에 들렀다가 절을 나선다. 넓은 터와 고색 창연한 건물이며, 불상 등이 송광사의 옛 영화를 말해주는 듯하다. 송광사를 나와 절 뒤편의 보이스카웃 훈련장에서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른다. 붉은 꽃을 피워낼 준비를 마친 진달래가 꽃망울을 머금고 있고, 생강나무는 어느 새 노란 꽃망울을 막 터뜨리기 시작했다.

살랑대는 봄바람이 봄을 맞으러온 나그네의 가슴을 파고든다. 동네 뒷산 같은 평범한 종남산이지만 험하지 않은 바위지대가 가끔 나타나 변화를 준다. 건너편으로는 원등산과 위봉산이 편안한 모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소양면소재지에서 송광사까지 이어지는 벚나무 길과 주위의 논배미들이 정답다. 상쾌하게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고요한 배경음이 되어주는 봄바람 소리가 어울려 봄의 교향악이 된다. 봄의 교향악에 맞추어 걷는 발걸음은 그 자체가 춤이다.

산을 찾아가는 길은 새로움의 추구이자 신비로움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계절의 변화를 맛보고 매번 다른 경관을 만나는 일 자체가 그렇고, 산이 가지고 있는 장중함과 고요함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그러하다.

정상에 선다. 동쪽으로 위봉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그 너머로 진안의 운장산과 연석산의 장쾌한 능선이 어렴풋하다. 연석산 남쪽으로 원등산과 주위의 산줄기들이 파도를 치듯 출렁인다. 남쪽으로는 만덕산이 멀리서 실루엣을 이루고 있고, 남서쪽으로는 전주시내가 보일 듯 말듯하다.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조금 가다보니 지금 걷고 있는 산줄기가 이어지는 서방산이 지척으로 다가오고, 북쪽 멀리에 운암산이 우뚝 서 있다. 길 양쪽으로는 산죽이 혼자 조용히 걷고 있는 나그네를 호위한다.

정상에서 주능선을 따라 20분 정도 가다보니 봉서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 서쪽 저 아래로는 간중저수지와 저수지 아래로 용진면의 넓은 들판이 평화롭다. 봉서사 쪽으로 내려가는데, 바람소리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고요하다. 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새들의 노랫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새소리마저 그쳐버린 고요한 숲은 차라리 적막하다. 중키 정도의 갈참나무들이 외로운 나그네의 친구가 되어준다.

봉서사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에 끌려 발걸음을 옮긴다. 서방산 남쪽의 양지바른 곳에 둥지를 튼 봉서사가 조용하고 편안하다. 대웅전, 진묵당 등의 편액에 쓰인 서경보 스님의 글씨가 특이하다. 다른 절에서 볼 수 있는 해서체 글씨와는 달리 마치 새가 날아가는 듯한 모양의 글씨체다.

봉서사 아래의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데 마음이 가볍다. 북쪽으로 보이는 서방산에는 어느 새 구름이 자욱하다. 산 속에서 들었던 구슬픈 소쩍새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산행코스
송광사(1시간 30분) → 정상(1시간) → 봉서사(40분) → 두억리 (총 소요시간 : 3시간 10분)
*교통
-. 호남고속도로 전주교차로를 빠져 나와 전주동부우회도로를 따라 진안방면으로 26번 국도를 탄다. 진안쪽으로 가다가 완주군 소양면소재지로 빠져 나와 송광사로 진입한다.
-. 전주(모래내)에서 송광사행 시내버스가 06:25부터 21:25까지 27회 운행된다.
www.chosun.ac.kr/~gs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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