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등지고 서울로 떠나는 교수들
지역 등지고 서울로 떠나는 교수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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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을 미술로, 인권의 역사로 정리하던 학자들이 광주를 떠난다. 전남대 미술학과 이태호 교수는 3월부터 명지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남대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들의 이직이 주목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지역의 목소리를 전국에, 세계에 대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재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방분권화가 강조되는 이 시점, 이런 두 사람의 이동은 지역 발전의 큰 손실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그 사람만큼 자신의 주관을 갖고 중앙통로에 지역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 이교수가 광주를 떠난다는 소식에 지역 미술계에서 나왔던 안타까운 목소리다.
1980년 1년을 예상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광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왔던 이교수는 광주와 인연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하고 23년동안 지역에서 머물며 민중미술이론을 정립했다.

정근식 교수도 광주인권운동센터 대표로 활동하면서 광주를 진정한 인권 도시로 만들기 위해 선두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다. "동광주병원 문제 해결을 위해 1인 시위를 자청할 정도로 교수라는 직위보다 인권을 위한 일이라면 먼저 발벗고 나서는 운동가였다"는 것이 지역 사회에서 정교수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움직임에 '왜' 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떠나는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이태호 교수는 미술사학 공부를 위해, 정근식 교수는 일을 마치고 떠날 때쯤 입장을 이야기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이 입을 열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이들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 "지역 인재 육성은 훌륭한 사람 데려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행정적·제도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문제는 대학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남대는 이태호·정근식 교수를 비롯해 정태호 법학과 교수가 경희대로, 이종환 수의학과 교수가 건국대로 옮겼다. 이 학과들은 최근 3-4년 동안 계속 교수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각 대학마다 교원 임용시 타대학 출신을 1/3 이상 뽑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모교 출신 중심의 교수 채용으로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학교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이는 신규 임용시 적용되는 사안일 뿐, 타대학 출신 교수들이 정착하기란 쉽지 않은 일. 이직자 대부분이 타대학 출신이라는 점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남대 동료 교수들은 "어느 대학에서 머물어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대학 사정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심하다"며 광주전남의 거점대학에서 교수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수년째 논의되고 있는 지방대 육성방안이 제도로만 겉돌고 있음을 꼬집었다. 이로 인해 경력 쌓아서 보다 좋은 조건으로 이동하고 싶은 교수들이 많아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있다.

지방분권화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다. 기존에 머물고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을 쏟는 것, 이들이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 주는 논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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