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대보름 당산제는 쓸쓸했다
농촌마을 대보름 당산제는 쓸쓸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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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숨었다. 15일 0시 당산제는 어둠 속에서 올려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가고, 올해는 서울에서 향우들도 오지 않았다

부산 해운대 보름맞이 민속행사에 50만명이 모일 거라고 했다. 순천낙안 민속촌에도 보름행사를 성대하게 치른다고 했다. 농촌고흥 한 마을의 보름제사는 어둡고 찬바람이 불었다.

제주가 된 어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자 보름달이 구름을 뚫고 나왔다. 그러나 잠깐일 뿐, 수천 년을 왔다간 저 달은 또 숨어버렸다. 제상도 풍성한데 왜 자꾸 달님은 가시려 하는가? 제주들은 더욱 고개 숙여 절을 하고 풍물은 격렬하게 두들겨 팼다. 바람도 잦아들어 촛불도 다소곳한데 정녕 보름달님은 발길을 돌리시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산나무님 큰 어깨는 더욱 꺾이고 육중한 몸이 더없이 늙어 보였다.

아직 봄은 산 너머에 있고 일년 농사는 가닥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쌀쌀한 날씨만큼 오래된 불안이 세월의 끝까지 걷히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러한 암울을 뚫고 그래도 와준 달이 고마웠다. 그렇다. 사람이 없는데, 음식만 넘친들 무엇하랴. 모두 자유도시 해운대로 민속촌으로 갔고, 힘없는 늙은이와 초라한 몇몇 젊은것들이 정성과 기운을 생떼 쓰듯 쏟아낸 농촌인데, 달님의 마음이 평안하겠는가?

이 땅은 달과의 인연이 아득히 길다. 음력(陰曆)이 흐르는 대로 씨뿌리고 수확하며 수천 년을 농경사회로 살았다. 그 많은 외란과 내란, 산천이 피를 덮어쓰고 불바다가 되었어도, 살아남은 자들은 달을 따라 양식을 얻고 자식을 낳았다. 강요된 내란 6.25가 끝나고 부터였을까? 황폐한 땅이 보릿고개를 감수하며 복원될 쯤이었을 것이다.

'달이 느리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자유! 시장경제'라 칭하던, 자본의 회오리는 한낮에도 깨댕이를 벗고 칼을 휘두르며 농사를 몰아세웠다. 비료 농약을 팍팍 부어서 두배 세배의 속도를 내었다. 공돌이 월급보다 더 낮은 촌놈들의 몸값에 한국사회는 날로 발전하였다. 자식들은 도시로 탈출하였으나, 웬일이니? 농토는 늘 부족하였다.

어촌의 바다를 매립하고 다수확 재촉 속에 한 30년 좆나 달려왔는데, 세대가 어장나 있었다. 30살이 60살이 되어도 아직 젊은이여야 했다. 몇 안된 젊은것들은 콤바인 하우스 축사에 후계자 농업경영인으로 불리우더니 빚잔치로 정신이 없고, 폐교에 풀이 난지 오래 되었다.

힘없는 늙은이와 몇몇 젊은 것들이
정성과 기운을 쏟아낸 어두운 농촌…
대보름 음식만 넘쳐난들 무얼하랴
올핸 서울서 향우도 오지 않았는데…


그런데 10여년 되었을까? '자유! 세계화'라 부르는 살모사 자식 같은 '자본의 변형'이 출현했다. 자본을 따라서 가랭이 찢어지게 달려온 농촌을 광속(狂速)으로 몰아붙였다. 다다수확의 속도로 도망쳤으나 운 없이 걸리면 몽땅 갈아엎어야 하는 폐농(廢農)시절이 도래하였다.

달의 계절은 멀어져가고 한겨울에도 싱싱한 과일이 쏟아지는 제5계절의 시대도 지나, 신자본주의는 아예 계절을 초월하자고 요구했다. 하여 농업, 모든 민족의 어머니는 자살(?) 또는 피살되고 있었다. 광분한 세계화는 민족문화와 음식의 자립을 넘어뜨리고 자동차 핸드폰과 동급의 속도로 단일화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이 바람에 작년에는 보리를 절반만 심으라고 하더니 올해부터는 농토를 놀리면 돈을 준다고 했다. 나라(國家)가 농민에게 농사를 짓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유사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제곡물수출집단의 요구와, '경쟁력 약한 농산물을 수입하고 경쟁력 강한 공산품을 수출하여 부자가 되자'는 나라의 치밀한 계산이 협상한 결과였다. (누가 이익일까?)

오늘의 대보름 당산제까지는 이처럼 기나긴 배반의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보름달은 여전히 와서 외로운 당산나무를 위로하고 갔다. 전통사회 농촌은 위기에 처했으나 아직 자연사하지 않았다. 삶의 문화로서 민족문화도 위태하지만 이렇게 지속되고 있었다.

농촌에서 옷을 벗겨 자유도시로 가져가, 문화상품과 문화강국을 모색하는 곳곳의 이벤트 행사장에도 정월 대 보름달은 떴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해의 행복과 평화를 빌었을 것이다. 응답이었을까? 이날 전세계 수천만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반전평화'의 실천에 나섰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봄은 들을 다시 빼앗아 오지 않겠는가? 봄꽃구경 나선 상당수 국민들이 들녘으로 올지 모를 일이다. 농사체험 이벤트를 약간만 준비한다면 '삶의 문화'를 살 맛나게 공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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