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컨셉부터 바꾸자
지역축제 컨셉부터 바꾸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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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광역자치단체는 물론이고 기초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지역축제들이 급속하게 증가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도자기엑스포, 경주문화엑스포, 광주비엔날레 등과 같은 메가이벤트 성격의 축제로부터 금산인삼축제, 강진청자축제, 광주김치축제 등과 같은 지역특산물 혹은 지역특성화축제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다'라고 칭할 만큼 축제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천여 개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지역축제들은 서로 비슷비슷한 포맷과 진행방식, 지방자치단체의 전시성 행사, 축제프로그램 개발의 부재 등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 많은 축제가 개최되고 있지만 축제다운 축제가 별로 없다든지 어디를 가든지 비슷비슷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즉 축제의 각종 행사프로그램이나 먹거리, 공연 등이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제가 범람하는 시대에 축제가 없다거나 큰 규모의 예산에도 불구하고 빈한한 행사로 일관된다는 역설적인 발언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만들어진 지역축제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축제사업을 상업적인 부가가치 증진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자치단체장의 치적사업 캠페인으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지역축제들이 우리 고유의 전통축제와는 별 상관없는 일종의 이벤트 중심 행사로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축제들이 문화향유자인 지역주민들, 혹은 관람객들과의 관계를 배려하는 행사라기보다는 보여주기식, 관람형의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며 어떤 축제에서는 기껏 주민노래자랑 정도가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2년 광주김치축제 ©김태성 기자

이런 상황에서 현재 지역축제의 규모와 조건, 행사 방식으로는 주민참여형 내지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정서와 의례를 담아내는 행사로의 전환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축제의 컨셉을 올바르게 설정하고, 전문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고, 축제의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피드백시스템을 구축한다손 치더라고 본질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연대에서는 그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지역축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문화운동의 측면에서 제시해왔지만, 현재의 축제를 인정한 측면에서였지 축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없었다.

비판과 현상에 대한 정책제안의 수준이었지, 새로운 대안축제 모델을 제시하거나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물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지역축제가 처해있는 상황, 즉 방송매체와 공연문화가 발달하면서 발생하는 시설의 문제, 짧은 기간에 집중화되는 프로그램의 문제, 이벤트화된 축제로서 대규모의 관람객이 참여하는 행사들은 축제의 본래적 의미를 되살릴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공동체가 갖고 있는 다양한 역할을 정서적으로 혹은 이념적으로 결집시키는 상징적 의식의 역할을 한 '축제'를 복원시키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축제공동체를 통해 유희와 풍속을 재현하고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의식공동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지금과 같은 축제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축제의 컨셉은 바뀌어야 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은 작은 규모의 '마을축제'에서 대안문화축제로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덕산마을 수몰문화제 ©김태성 기자

2002년 8월 장흥 유치에서는 수몰민들의 넋을 기리고 이 땅에 수몰이 가져오는 마을의 붕괴와 민초들의 역사가 수장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지가 담긴 '덕산마을 수몰문화제'가 열렸다. 환경과 인간이 어떠한 관계 속에 조응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여러 문화단체들이 참여하여 행사를 기획하였으며,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그 마을 최대의 축제가 됐다. 물론 축제를 기획한 몇몇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지만, 축제의 의미나 주민들의 참여, 관람객들의 호응도 면에서 일반적인 지역축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모든 지역축제들이 마을축제로, 대안문화축제로 바뀔 필요는 없겠지만, 며칠 간의 행사에 수억 원의 예산을 일회적으로 투여하는 관성적 문화행정은 재고되어야 한다. 작은 규모이지만 여러 마을들의 역사와 삶들을 일상으로 끌어내 축제화하는 노력들은 가장 적극적인 방식의 지역문화활성화 전략이다. 또한 이러한 축제를 통해 지역문화환경이 개선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정체성과 문화인프라를 구축하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축제는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생명력을 지닐 수 없다. 축제의 주체가 시민, 또는 지역주민이 되지 못한 채 관 주도로 진행되거나, 외형적으로 늘어난 규모, 잘 짜인 프로그램 진행만으로는 축제가 지역주민들의 삶 속에 자리잡고 유기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축제는 의미 그대로 지역주민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입춘도 지나고 이제 완연한 봄날이다. 우리지역에서도 3월의 '광양 매화축제'를 필두로 올 10월까지 34개의 지역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다. 결국 지역축제의 진정한 활성화는 지역주민을 축제의 주체로 만드는 일이며, 어떻게 주체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이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운동의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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