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세상에 향기를 채색하다
순수한 세상에 향기를 채색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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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팝콘스케치 그림 동아리

말머리 중얼거림
살아가는 방식은 자기 선택이다―고 늘 생각하며 산다
비록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여건이 제 얼굴 생김만큼이나 서로 다르다할지라도......
어쩌면 뭇 꽃들처럼 종(種)에 따라 이미 결정 지어져버린 모양과 향기가 사람에게도 있는 건 아닐까?고 생각할 때도 더러 있다. 평생 자기를 갈고 닦는 순화의 과정이 애저녁에 한정지어진 빗금 안에서 조금 더 화사하게 개량되거나 조금 더 순정한 향기를 갖기 위한 발버둥은 혹시 아닐까? 우리가 설명하기 힘든 기질을 천성이니 뭐니로 두루뭉실 눙쳐서 한 보자기에 털어넣고는 다 이해한 듯 착각하는 바로 그 천성이라는 게 기실 세분된 종(種)의 구별은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 개운하지 않은, 뭔가 들척지근한 기분이 든다
내 한계. 내 그릇의 크기가 내 의지와 선택 이전에 이미 정해진 거라면 에구! 신경질 나!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를 서울 체질이 아니다고 대뜸 규정짓고는 달랑달랑 보퉁이짐만 싸든 채 귀향을 했다. 아직은 묻힐 자리 찾아 회귀하는 본능이 작동할 때가 아닌데도 말이다.(그런가?)

한동안 내 발부리를 겨냥한 입말들의 무차별 사격이라니...하긴 남편과 딸을 서울에 둔 채 작은애만 데리고 밤 보퉁이 싼 사람처럼 세간 하나 없이 내려왔으니 일 없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겠다. 어찌 보면 시골살이의 묘미인지도 모르지만... 시시콜콜 참견하고 끼어들어 숟가락 몇 개, 간장종지 몇 개, 하고 속살까지 들춰야만 직성이 풀리는 버릇들. 이웃 간의 따뜻한 인정이라고 널널하게 표현되는 대책없는 호기심 말이다

그 덕에 내가 들어도 제법 그럴 듯한 한 편의 소설이 순전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모양으로 속정 깊은 사람들은 자못 측은한 눈으로 나를 <쪽박 깬 여자>보듯 했다. 돌아다니는 말이란 게 본래 발 없고 얼굴 없어도 푸르르 푸르르 잘도 끓어 넘치는 거라 진원지를 찾아나설 수도 없고 일일이 댓거리할 수도 없는 데다 귀찮기도 하여 그냥 실소했다.

쪽박을 깨지도 않고 측은할 일도 없는 나는 정작 오목 가슴에 얹힌 체증을 풀 듯 작업실에 캔버스를 펼치고는 물감통 매고 산으로 바다로 룰루랄라 쾌재를 올리며 나돌아도 좋았으니 그건 내가 오랫동안 살아보고 싶어한 생활의 유형이었고 덤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들> 속에 끼어드는 횡재까지 얻었으니 나는 복도 많다.



마당을 나온 암탉들

나는 지금 스무명의 씩씩하고 아름다운 어머니들을 감히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고 함부로 부른다 <팝콘스케치 그림 동아리> 회원들을 말이다. 동아리 이름까지 옥수수 튀밥 또는 옥수수 알갱이라고 제멋대로 바꿔 부르는 나는 명색 <팝콘스케치> 지도교사다
지도라니 가당찮다 한 뼘 쯤 어슷하게 비껴서서 옥수수 알갱이들이 그림 안에서 달궈지고 부대끼다가 튀밥처럼 부풀어 올라서 대박 터트리는 그림으로 꽃 피는 걸 희희낙락 바라보는 구경꾼이 옳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3회 정기 전시회에 출품된 회원의 그림 중에서 어두운 닭장을 등 뒤에 두고 마당을 활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닭들이 마치 씩씩 용감하게 활동 반경을 집 밖으로 넓힌 회원들의 모습 같다며 까르륵거린 그림 제목이다
내가 볼 때 <팝콘>은 확실히 바구니 밖으로 튀어나온 옥수수 알갱이들이다(어? 이미 튀밥인가? 것도 아주 고소하게 벙글어진?)

장흥공공도서관 문화교실에서 터를 닦고 꾸려진 아마추어 그림 동아리이지만 올해 2기를 맞아 회원이 스무 명을 넘었고 정기 전시회를 세 번 치뤘다. 비정기전인 연합 전시회에도 몇 번 참가하면서 지금까지 수채화, 연필 데생, 목판화, 아크릴화, 한지 그림, 한지 공예를 두루 해왔고 2002년 전시회는 세밀화로 그린 우리 산천의 풀꽃을 주제로한 보태니컬 아트까지 두루 적셨다

손 끝 야무진 재주 때문에 <팝콘>회원들이 커보이는 건 아니다. 머무르지 않는 자기 개발이 감탄스러워서다. 값 없는 노력이 어디 있을까? 그림, 공예, 글쓰기, 책 읽기, 가야금, 서예. 일본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연극, 노래 부르기... 늘어놓자면 회원들이 참여하는 활동 공간엔 바람벽이 없다. 내재된 열정과 열린 가능성이 뿌리 튼실하고 가지 울창하고 이파리 창창한 느티나무를 보듯 늘상 미덥다.

허난설헌이 조선 땅에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 했다던가?
펼쳐볼 수 없는 날개는 갑절로 아픈 속박이었으리라
여자가 밥상 위에 올라앉았다는 말인지 뭔지, 여성 상위 시대니 여성학이니를 외쳐댄 지도 한참인 오늘은 이 땅의 딸로 태어난 게 전혀 한스럽지 않는 것일까?


글쎄올시다
몇 년 전 일본 오사카에서 살면서 영사관에 근무할 때다
영사관 직원을 공채하는 광고를 냈다. 문의 전화며 이력서가 우루루 쏟아졌다. 일감을 들고 총무과에 내려갔더니 남직원이 전화를 끊고나서 마구 흥분한다 즉슨, 마흔이나 된 아줌마가 이력서를 내겠다 한단다 "아이구 참! 얼척 없네요" 흥분한다
내 나이가 아이구 참 얼척없는 나이를 꼴까닥 넘겨버린 지도 한참인데 나를 붙들고 아이구 참!을 따발총으로 쏜다 '짜아식!' 입 비틀어 웃지만 속은 쓰다. 아이구 참!

대체 마흔 넘은 아줌마가 뭘 어쨌다는 건가?. 아줌마가 마흔을 넘기면 머리 속이 뻥 뚫려버리는 집단 고질병이라도 앓는다는 건지, 아줌마여서 맘에 안든다는 건지, 마흔을 넘긴 것이 불만이라는 건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물론 나는 머리 띠 두른 여성 해방론자도 아니고 우월론자는 더더욱 아니다
성 전환을 할 것도 아니고, 무단히 주민등록 시작 번호가 2에서 1로 바뀌지도 않을 것이며 내가 여자 아니다라고 우겨서 여자 아니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남자 아니고 싶다고 해서 자고 일어나니 남자 아니게 되어 있더라는 황당한 얘기도 기대할 바가 못되는 데 여자다 남자다를 가르고 따질 이유가 뭔가?

상관 없다. 그저 모나고 귀퉁이 찌그러진 모습일지라도 내 모습 이대로 자유롭고 솔직하게 살아내고 싶을 뿐이다. 내 삶 속의 금은 초등학교 때 짝꿍에게 눈 무섭게 째리며 연필 꽁다리 하나라도 넘어오면 안된다고 힘주어 긋던 책상 금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친다
내가 담임 맡았던 아이들 중에서도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삶의 목표라고 가늘게 뜬 눈으로 대답하던 아이들이 좀 많았던가? 하긴 그보다 정도가 심해서 무역회사 사장 부인이 장래 희망이라며 목을 세우던 애도 있었지

자기 삶을 주장하고 개척하는 사람들의 당당함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실패조차 아름답다
<팝콘>이 그래서 좋다
오히려 더 무모해졌으면 좋겠다. 주변 여건과 상황을 미리 겁내는 움츠림과 매듭을 개운하게 풀었으면 좋겠다.(욕심이 지나치면 체할까?)
물론 머리 수가 여럿이라 부대낌도 있고, 더러 낭비되는 감정도 있어 보인다

밖에서 들어오는 시기 질투도 있다. 어디든 사람 모이는 곳에 양재기 우그러뜨리는 소리 없으랴? 가당찮게 굴러다니는 소리에 움츠릴 게 뭔가?
일상의 권태에서 달아나는 일탈이 아닌, 뺀질거리도록 잘 관리한 피부로만 감춰지는 나이가 아닌, 맵시 나는 껍데기로 옷 속의 사람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 내 안의 나를 직시하고 존중하는 겸손함으로 거침없이 뛰어들고 건강하게 선택하며 스스로를 달구고 서로 북돋는, 더 많은 암탉들을 꿈꾼다.
암탉들이여 씩씩하게 마당을 나서자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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