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파 놓으면 너구리라도 꼬여든다?
구덩이 파 놓으면 너구리라도 꼬여든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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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을 옮기네 안되네 옥신각신 하더니 벌써 현장에서는 몇 층 골조가 올라가고 정부도 관련 예산을 편성해 주었다.
문화도시 광주에 어디 내놓을 만한 미술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건 좋은데 하필 도심공동화의 대안인양 묶어지면서 자리문제부터 이러 저런 입장차이들로 지지부진하고 있다.

문화시설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지금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고들 불만인 터에 새로 짓게될 시설은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세워지고 운영해 갈 것인지 먼저 운영주체인 시민사회 속에서 폭넓게 논의와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시와 구에서 만든 문화예술공간들이 실제 지역민들 속에서 얼마나 실속 있게 운용되고 있는지도 짚어 보아야 한다.

시설물로 경쟁할 게 아니라 값진 내용과 생산물로 제 몫을 다해야 한다는 희망사항들이 자꾸 공염불이 되고 있다. 일단 '구덩이를 파 놓으면 너구리라도 꼬여든다'는 식은 우선 시설부터 만들어 놔야 뭐라도 기대할 거 아니냐고 당장 배고픈 사람들을 달래던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담을 그릇이 결코 적지 않은 요즘, 정작 그 구덩이에 영양가 있는 것이 저절로 채워져 주진 않는다는 게 문제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문화지수가 최상위로 평가되고, 최첨단의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국제적 문화도시인데 내놓을만한 현대미술관 하나 없다는 데 사실 속이 훵하다. 정부에서도 타당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2001년부터 해마다 10억·30억·80억 해서 내년 것까지 총 120억이 지원되는 걸 거다. 그렇다면 부지에 걸려 막혀 있기보다 어떤 공간이 광주와 광주시민들에게 정말로 듬직한 자산으로 쓸모가 클 것인지 좀더 깊이 있게 생각들을 모아 봤으면 한다. 들어설 위치나 내부 구성도 어떤 공간으로 쓰일 것인가에 따라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고전적 의미의 순수 미술관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지역미술 풍토와는 결이 잘 맞지 않지만, 요즘의 미술이라는 게 정적인 공간에서 홀로 차분하게 예술세계를 음미하는 감상공간 채우기에 머무르지는 않고 있다. 더욱이 도심에 미술관이 들어선다면 어쩌다 큰맘먹고 찾아가는 한적한 교외의 미술관과는 달라야 한다.

예술의 개념과 표현형식부터가 과거의 타성에 매이기보다는 그것이 미술이냐 공연이냐, 회화냐 설치냐에 연연하지 않고 얼마만큼 관객과 가깝게 그리고 밀도 있게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전달방식으로서 복합적 형식을 자꾸만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뻔한 형편에 양질의 소장품을 채워 가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고, 예술품의 무덤이라는 수장작품의 운명을 계속 걸머지기보다 우리시대의 여러 표정의 문화들이 활발하게 쏟아 부어지고 다채롭게 즐겨지면서 그 공유를 통해 또다른 문화자산을 생산해 내는 살아 있는 복합적 문화현장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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