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20세기 한국최고의 소설가' 황석영
<조선>과 20세기 한국최고의 소설가' 황석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2일 시공사는 자사 발행 계간지 '문학인'과 한국문예창작학회(회장 김수복 단국대 교수)가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20세기 한국문학사 10대 사건 및 100대 소설’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 20세기 한국의 최고 소설가에 '객지''장길산' 등을 쓴 황석영(黃晳暎.58)씨가, 최고 문제작으로는 조세희(趙世熙.60)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중앙 일간지들은 13일 이 사실을 문화면 기사로 일제히 타전했다. 제목들을 비교해 보시라.

- "20세기 최고 소설가는 황석영"(중앙일보)
- "20세기 한국 최고소설가는 황석영" 문학관계자 109명 설문(국민일보)
- 20세기 최고의 소설가는 황석영(한국일보)
- 20C 한국최고 소설가 황석영씨(세계일보)
- 20세기 최고소설가 황석영씨…계간지 '문학인' 선정(동아일보, 초판)
- '20세기 한국최고의 소설가' 황석영씨(대한매일)
- '20세기최고 소설가' 황석영씨(문화일보)
- "20세기 최고 소설가는 황석영"(한겨레)
- 20세기 한국문학 최고의 소설 조세희 ‘난·쏘·공’;문인 109명 설문조사(조선일보)



눈 밝으신 분들이라면, <조선일보>와 타신문들의 상이점을 단번에 알아차리셨을 게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모든 신문들이 '20세기 최고소설가로 뽑힌 황석영씨'에 초점을 맞춘 반면, 오직 <조선일보>만은 조세희씨의 '난.쏘.공'에 초점을 맞춰 제목을 뽑았다는 사실을.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획일성에 대한 '자유언론' <조선일보>의 본능적인 거부?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홀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조선일보>만의 고고한 기개와 품격?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분들은 어쩌면 그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조선일보>가 '일등신문'으로 군림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득의한 웃음을 지으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100대 소설'(20위까지)과 '논쟁.사조분야 10대사건' 그리고 '제도.매체분야 10대사건'까지 도표로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모든 신문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도한 '20세기 최고 소설가 순위'를 슬쩍 빼돌린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또 황석영씨의 이름을 기사 맨 끝줄에 구차하게 끼워넣은 것은 어찌된 걸까?

일언이폐지 왈, 내 눈에는 이것이 '다양성의 승리'가 아니라, <조선일보>의 '옹졸한 보복'으로 비친다. 황석영씨가 누군가? 지난 2000년 5월 30일 공개강좌에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해서 지식인들의 안티조선붐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7월에는 <조선일보>가 심혈을 기울여 재편한 동인문학상 후보에 자신의 작품(오래된 정원)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를 거부해 <조선일보>의 속을 발칵 뒤집어놓은 인물이다.

당시 황석영씨가 웅변한 '거부의 변'을 들어 보시라.
"군사 파시즘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조선일보>는 침묵과 수혜의 원죄의식으로 동참하게 된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로서 막강한 언론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시대에 사회의 기초 공리는 억압에 의하여 말살되거나 부인되었으며, 그 반대의 가설이 산더미처럼 재생산되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위해서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일 것이다...."

"요즈음 <조선일보>는 정치.경제.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 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 좀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 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 가까운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는 냉전적 공격과 터무니없는 폭로로써 '권력'을 누리고, 이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를 유지해보려 하는 것인가?...."

"문학상의 상업주의와 사이비 권력놀음 따위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경품 뽑기 대회도 아니고 불량품 가려내기도 아닐진대,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 식의 사이비 권력놀음을 당장 걷어치워라. 심사에 동참한 동료 문인들에게도 엄중히 항의하건대, 나는 변변치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욕을 보이지 말아 주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동인문학상 심사대상을 거부한다' 중에서 발췌.인용, 2000.7.20, 한겨레)


그뿐인가? 2001년 7월 소설가 이문열씨가 칼럼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와 '홍위병이 판친다'를 <조선>, <동아>에 기고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일었을 때,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전화 인터뷰에 출연(7.10), "지식인과 언론의 유착은 이익을 취하려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려 <조선일보>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7월 17일에는 <한겨레신문>에 "침묵이 지겹다"는 글을 게재하여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언론들의 횡포를 보고도 무기력하게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질타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황석영씨가 '20세기 최고 소설가'로 선정됐으니 <조선일보>의 눈길이 고울 리 없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하여 모든 신문들이 황석영씨의 이름을 제목으로 뽑을 때, 오직 <조선일보> 홀로 '난.쏘.공'을 부각시키고, 황석영씨의 이름을 기사 맨 마지막에 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근슬쩍 처리한 것 아닌가? 내 시각이 잘못됐다면 반박하라.

나는 <조선일보>의 불행에 연민을 금치 못한다. <조선일보>가 총애하는 작가 -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 대신 <조선일보>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가 최고소설가의 영예를 차지한 것에 대해.
/위 글은 인터넷한겨례와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용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