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고향길·밤길
산길·고향길·밤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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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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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욱
새벽이면 국사봉 골짜기 산길을 걸어 오릅니다. 집을 나서면 우리집 개 보고가 앞장을 섭니다. 앞장을 서는 정도가 아니라 신나서 내달립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잠깐 멈추었다 돌아보고는 다시 뛰쳐 나갑니다.

한 이십 분 걸으면 우산아재 산다랑치 논배미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바로 그 위에 우리가 머무는 자리가 있습니다. 계곡물을 보고는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는 양손으로 떠서 꿀꺽꿀꺽 마십니다. 세수를 하지 않는 보고는 이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나는 계곡물로 얼굴을 씻습니다. 아침 세수인 셈입니다.

이제 동터오는 새벽 하늘을 바라다봅니다. 날마다 다른 얼굴입니다. 하루는 잔뜩 찡그렸다가 하루는 해맑은 얼굴입니다. 어느게 진짜 얼굴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두가 하늘의 얼굴이라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맑은 얼굴일 때 내 기분도 좋아집니다.

내려올 때는 병태 성과 여기저기 죽어가는 통나무를 잘라 어깨에 들쳐 메고 오기도 합니다. 땔감으로는 안성맞춤입니다. 보고는 또 저만치 앞서 뛰어 내려가고 나는 오래오래 이 새벽 산길이 차곡차곡 내 속으로 들어 쌓이는 생각으로 즐거워집니다.

얼마 전 댐으로 수장될 덕산마을에 문화마당 벗들과 갔습니다. 지난 여름 수몰마을문화제를 함께 치룬 마을인 데 십 여 가구는 이사하고 십 여 가구가 남았습니다. 하지만 남은 이들도 더 추워지기 전에 모두가 이사할 모양입니다. 장작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찬 소주를 너나없이 나눠 마셨습니다.

이별주란 말도 오가고 일 년에 한 번씩은 만나자는 언약주란 얘기도 나왔습니다. 오 육십대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은 장흥이나 유치 인근에 자리를 잡아 이사하고 칠 팔십대 주로 혼자 남은 노인들은 수도권 등지에 사는 아들네로 먼 길을 떠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어 자식 따라 가는데 어찌 살까 다들 불안한 표정들입니다. 먼저 자식 따라간 동무들의 안 좋은 소식을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노인들이라 더러는 허망하게 일찍 죽고 더러는 다시 고향 근처로 내려온 모양입니다.

©마동욱

고샅길을 따라 마을을 둘러봅니다. 방 문짝이 뜯겨나간 집이며 지붕이 벗겨진 집이며 사람이 떠나간 집들은 너무나 쓸쓸해 보입니다. 이 다정한 고향길을 떠나 낯선 길을 걷게 될 노인들. 얼큰하게 취해 험한 욕지거리를 해도 넉넉하게 받아주던 길. 죽을 때까지 내내 고향길이 눈에 밟힐 할머니 할아버지들.

시골길을 다니다 보니 트럭바퀴에 빵구가 가끔 납니다. 하루는 동무들과 뛰어 놀다 늦은 하늘이가 어둑어둑 해질 무렵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 차를 몰고 내려가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내려서 보니 앞바퀴에 빵구가 났습니다. 하늘이는 기다릴 테고 빨리 걸어 내려가도 사십분은 걸릴턴데 걱정이 앞섰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어둠에 익숙치 않고 오늘 같이 별빛 하나 없는 밤이라면 공포를 느낄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찬 밤공기에도 땀이 날 정도로 바쁘게 산길을 걸어 내려가니 기다리다 지친 하늘이가 저만치 걸어오고 있습니다. 캄캄한 산길로 접어들기 전 아랫마을 불빛이 있는 길을 걸어오는 하늘이의 동작은 굼뜨고 주저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가가서 보니 다 큰 놈(하늘이는 중학교 일 학년 입니다)이 눈물을 훔치며 서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니 꾹 참았던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렸을 터입니다. 둘이 손잡고 밤길을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이야기 내용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단지 아들과 손잡고 걸어온 그 밤길이 내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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