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비루할 순 없다
이보다 더 비루할 순 없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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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혹시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독자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 나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행운은 항상 나를 비껴가지. 이제껏 한 번도 복권이나 경품에 당첨된 적도 없고, 하다 못해 어렸을 적 소풍가서 보물을 찾아본 적도 없어. 버스는 꼭 눈앞에서 지나가 버리고, 화투를 칠 때도 내가 치려했던 패는 꼭 앞사람이 가져가 버리지… 등등.

나의 경우, 최근 들어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는 것은 물론, 평소에는 자주 오던 버스가 탈라치면 한참만에 온다든지, 심하게는 정류장에 사람이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신호에 걸리지 않으려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들을 심심치않게 겪고 있는데, 아마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독자들은 이럴 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나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먼저 피가 솟구치면서 얼굴이 불을 끼얹은 듯 상기된다. 동시에 입에서는 '쌍 시옷'이 섞인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주변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애꿎은 나무나 전봇대에 주먹을 한방 날리기도 한다―이후에 밀려오는 아픔에는 정체 모를 쾌감이 섞인 듯도 하다. 나는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므로, 미간은 계속 찌푸린 채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집에 가는 길 내내 '복수'를 계획한다. 나의 복수 계획은 교통불편신고카드를 작성해서 보낸다거나, 시청의 교통과에 민원을 올린다거나, 아님 '시민의 소리'에 제보를 해 버릴까보다, 하는 이성적인 생각들에서부터, 다음부터는 주먹만한 돌멩이를 들고 있다가 버스가 그냥 지나치면 확 던져버려야지 하는 나름대로는 폭력적인 생각까지를 망라한다.

이런 복수는 물론,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말뿐인 복수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의 복수 타령을 떠올리며 왜 그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었나 쓴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그날 밤 버스 운이 좋지 않으면 복수는 또 다시 시작된다.

내가 겪는 그 심정은 몸과 마음에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탈모나 소화불량, 그리고 몇 분이나마 수명이 단축되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말 커다란 불운이 닥쳤을 때라면 오히려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를 이런 사소한 불운들에 일일이 신경을 쓴다는 것은 자기 소모적인 행동임에 틀림없다. 어차피 닥친 불운, 신경 쓰면 자기 손해니 잊어버리는 게 상책인 것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나보다는 몇 배나 더 예민한 성깔을 지닌 그가, 사소한 불운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상책이다, 라고 생각했더라면, 그 이전에는 단지 러시아 문단의 일류작가였던 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지하생활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그의 주요 장편들은 모두 이 짤막한 고백록 '지하생활자의 수기'(혹은,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다.

지하생활자는 한 마디로 말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복수의 감정에 자신의 전존재를 내던지는' 사람이다. 어떤 장교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한 마리 파리처럼' 취급했다고 생각한 그는 장교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분, 체격 등 모든 면에서 장교보다 약한 그는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복수를 생각해내는데, 그는 장교와 마주쳤을 때 길을 비켜주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

이 '사소한' 복수의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일단 그는 장교와 동등하게 취급받기 위해서 월급을 가불받아 장갑과 모자를 사고, 코트의 싸구려 너구리털 칼라를 비버 칼라로 바꾼다. 그는 복수를 앞두고 이삼 일간 잠을 못 이루며, 자신이 당한 모욕을 거듭 되새기고, 보복을 꿈꾸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끊임없이 상기한다. 몇 번의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순간 번번이 길을 비켜버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심한 절망에 빠지고 만다.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이 오기는 온다. 하지만 상대는 그게 복수인지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그 복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장엄한 복수가 아니고, 날파리가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정도의 것에 다름 아니다. 이쯤 이르게 되면, 지하생활자가 어떤 됨됨이를 가졌는지, 그리고 그런 인물을 창조해 낸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비루함과 헛된 원한, 자기 멸시로 똘똘 뭉친 인간. 혹자는 책을 읽으면서 비루함에 치를 떨지도 모르지만, 그 비루함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하생활자는 사회의 부조리와 불운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해 무기력하기만 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절망에 빠져 말뿐인 복수만을 거듭하곤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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