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꾸는 삶의 현장 미술
함께 가꾸는 삶의 현장 미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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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면 화가의 아뜰리에나 전시관을 떠올린다. 비엔날레 때문에라도 현대미술이라는 걸 구경거리 삼아 둘러보게 되었지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고 푸념들이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제멋대로이기도 하지만 요즘의 미술이란 게 꼭 액자 속의 그림이나 고상한 미술관의 틀 속에만 닫혀 있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광주 문화동과 오치동의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도 공동의 생활공간을 미술형식을 빌어 가꾸어낸 틀 밖의 미술 사례다. 마을에 사는 작가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두 곳 다 주민들 스스로 발의하고 추진기구를 만들어 일을 벌리고 시와 그림을 만들면서 마을길을 화사하게 단장해낸 것이다. 고가 교각이나 썰렁한 축대옹벽에 페인트로 무늬를 그려 넣고, 큰 건물 앞이나 대로변에 억지스럽게 장식조각물을 세우고, 야외 전시장처럼 조각품들 모아놓고 나들이객을 부르는 기존의 환경조성미술과는 주체와 과정이 전혀 다르다.

10월 9일 세상에 선보인 오치1동 골목 벽화는 학교 앞과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 담벽에 오정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의 그림 67점을 100×60cm 크기 타일로 구워 펼쳐 놓았다. 유약 색이 엷어 아이들 그림다운 싱싱함은 덜하지만 아이들이 주로 오가는 길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채워 놓았다. 900여만원의 비용 가운데 구비지원 외의 절반 이상을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등 주체의식이 뚜렷했었다.

이 벽화와 연결된 큰길 가 벽면에는 지난 해 어른 화가가 그렸다는 10폭 짜리 오치 포도, 한전터 연방죽 같은 마을의 옛 자취나 특산물과 무등산 서석대 등 광주를 상징하는 소재들을 번갈아 그려놓아 이 길을 지나는 외지인이나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장이 되고 있다.

이보다 앞서 7월 16일에 먼저 마무리된 '문화동 '시화마을'은 또다른 분위기다. 대도시의 삶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한적한 변두리 주택지에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싯구들이 넓직한 타일로 만들어져 모자이크 장식무늬들과 함께 골목 담벽을 채우고 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하는 푸쉬킨부터 보들레르·박노해·명심보감·성경말씀 등등 집주인이 좋아하는 시나 금언부터, 초등학생 꼬마가 지은 동시까지 골목길 마을사람들의 삶의 정서가 아기자기하고 정겹게 배여 있다. 올해 초 처음 얘기가 나왔을 때는 반응들이 시큰둥했지만 주민회의를 거쳐 52세대 중 32세대가 뜻을 합해 구비지원 외에 집집마다 일부 비용을 거출해 가며 마을 가꾸기를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이달 20일까지 롯데갤러리에서는 [현장의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인 모임, 좋은 세상 만들기, 모내기 퍼포먼스팀 등 주로 삶과 미술을 연결시키는 데 애써 온 6개의 젊은 미술인 모임 초대전이다.

포장마차에서 미술소품을 팔고, 벼품종이나 벼멸구방제 안내판이 전시장을 메우는가 하면 시골 버스정류장에 벽화 그리기 작업을 영상물로 소개하는 등 흔한 감상용 전시는 아니다. 그 전엔 광주비엔날레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수창초등학교 방음벽에 청년작가와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 넣거나 사라진 남광주역 일원에 수산시장과 마을 사람들의 삶의 자취들을 공공미술 형식으로 엮어 놓기도 했었다.

사람의 생김생김 만큼이나 다양한 게 세상 삶이고 미술의 표정이듯이 굳어 있는 관념을 깨고 미술의 생명력을 생활 현장에서 여러 모습들로 키워내는 작업들이 훨씬 더 넓은 조형공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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