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명절-차례상도 주문, 사라지는 '민족대이동'
변화하는 명절-차례상도 주문, 사라지는 '민족대이동'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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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대행 옛말...차례상도 맞춤 시대>
<고스톱에서 찜질방으로·성묘에서 납골당으로...>
<명절문화 변화, 전통 이어가는 또다른 방식일 뿐>
<"'스트레스' 아닌 즐거운 명절 만들기">


'더도 덜도 말고 늘 이날만 같아 달라'던 팔월 한가위.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고속도로는 귀성행렬로 메워지고, 백화점과 할인점, 재래시장 등은 음식과 선물을 마련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통의 뿌리 깊음을 실감했던 명절이었다.

하지만 명절도 시대의 영향을 받기 마련. 예전에 한가위의 의미는 먹고 입고 노는 것의 비중이 컸지만 산업·도시화 되면서 명절은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의미로 바뀌고 있다.

이에 명절 문화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고 있다.
주부 9년차 이은영씨(35·광주시 동구 계림동)는 올 추석 차례상에 올릴 음식 대부분을 백화점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것으로 대신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20여가지가 넘는 음식을 일일이 준비하기가 매우 부담스러웠던 것.
차례음식 대행업체를 통해 '맞춤 차례상'을 이용한 주부들도 있다. '본가집'(광주 동구 대인동)는 40여개의 추석 차례상을 배달했다. 차례상 종류도 다양하다. 크기에 따라 알뜰상, 으뜸상, 본가상이며 가격도 4-6인분 1상에 음식 가짓수 총 23개로 15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이같은 상품은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고속도로에 허비하며 고향으로 내려가서 밤을 새워 음식을 준비하던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음날 새벽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갔다와서는 쉴 겨를도 없이 또 오랜 시간을 차안에서 보내며 서울로 올라왔던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 해소에 큰 역할을 한 것.

때문에 '형식만이라도 간소화 하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직까진 "조상들을 위한 음식인데 정성도 없이 남의 손에 맡길 순 없다"는 의견도 분분하지만 앞으로 차례상 주문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희생하는 명절이 아닌 함께 즐거워하는 명절을 만들기 위해서다.

본가집 박남석 대표는 "요즘은 부쩍 시어머니나 남편들의 차례상 주문이 많아졌다"며 "평소에도 며느리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제사상 배달해 달라는 시어머니들의 주문이 일주일에 10건 정도 된다"고 밝혔다.

놀이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에도 가족이 함께 할 마땅한 놀이문화가 없어 여전히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고스톱'을 즐겼다. 하지만 최근 주부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찜질방이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여가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전엔 깨끗한 몸가짐을 위해 명절 전에 '목욕탕'을 찾았지만 이젠 명절 연휴 끝 즈음 찜질방에서 피로를 풀며 그동안 가족간에 부족했던 대화를 여는 계기도 마련하고 있다.

변화바람은 민족대이동의 풍속도에도 불고 있다. 올해는 추석연휴가 짧았으나 예상 밖으로 고속도로 이동이 원활했다. 아들·딸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부모들이 이동한 것은 물론 굳이 도시를 떠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로 몰려오던 예전과는 달리 도시에서 태어나 핵가족으로 자란 세대들이 사회 기반을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장묘 문화가 변화면서 납골당을 찾는 이가 많아져 자연스레 벌초길에 나서는 이들도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명절문화는 변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 추석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상들이 물려준 명절의 흩어졌던 가족을 모이게 하는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들은 이들 나름의 전통을 이어갈 또 다른 방식을 찾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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