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잘 간다
세월은 잘 간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07.07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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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대중가요에 ‘세월은 잘 간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전체 가사는 생각나지 않지만 “아, 세월은 잘 간다, 아이 아이 아이”라는 대목은 기억난다. 요즘 그 노래가 실감이 난다. 한 주가 금방 지나간다. 월요일에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벌써 눈앞에 토요일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용용 죽겠지” 하며 나를 놀리느라고 시곗바늘을 최고 속도로 돌리고 있는 것 같다. 겁이 날 정도다. 이렇게 한세월이 마구 간다.

노래 가사에서 ‘세월은 잘 간다’의 ‘잘’은 ‘좋다’는 뜻보다는 “그래, 너 한번 무정하게 네 멋대로 가는구나!” 정도의 반어적인 어법으로 이해된다. 과일이 ‘잘’ 익어 가듯이 잘 가는 것이 아니라서 나는 세월이 좀 천천히 갔으면 하는데, 줄달음쳐 가는 세월에 일종의 원망 같은 것이 실린다.

세월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건, 죽을 둥 살 둥 무엇을 힘들여 열심히 하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제 속도로 잘 간다. 매정하게 가버린다. 때로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구나 하고 한숨을 쉴 때가 있다. 뭐 하는 것 없이 그저 세월만 축내고 사는 것 같아 무척 씁쓸하다.

인생이란 무엇을 해도, 아니 해도 후회만 쌓이는 것일까. 김소월의 ‘못잊어’라는 시에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혀오리다”라는 싯귀가 있다.

김소월의 시에는 인생의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한숨을 섞어 노래한 시가 많다. 그 시인은 젊었을 적에 이미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아버린 사람 같다. 그러기에 무정한 세월을 그렇게 시에 썼나 보다.

코로나가 휩쓸던 지난 3년간 병원 말고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다가 며칠 전 처음으로 지인을 만나러 멀리 갔다. 전화로만 가끔 안부를 묻다가 여러 해만에 만나러 가는지라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나나 지인이나 생업에서 은퇴하고 나이 들어가는 처지라서 그저 건강이 최우선 담화의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만났는데 지난 3년이 혹독했었던가 보다. 지인의 얼굴은 사뭇 늙어 보였다. 순간, 나는 바로 저 얼굴이 내 얼굴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건강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거울을 보면 언제나 거의 변함없는 내 모습이다. 마치 안 늙어가는 것 같다. 매양 보니까 나이 들어가는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다가 몇 년 만에 내 나이 또래 지인의 얼굴에서 나를 본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 덧없음, 그리고 잔혹함을 느꼈다. ‘세월은 잘 간다’라는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세월은 긴 장맛비에 홍수 난 개울처럼 시내 바닥을 할퀴고 뒤집고 난리를 치고 흘러간다. 홍수 뒤의 개울 바닥처럼 상처 투성이 얼굴이라고 할까.

누가 세월을 멈추리오. 누가 세월을 비켜서 있으리오. 나는 지인이 말하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서 내내 세월의 무서움, 차가움, 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세월이 멋대로 가는 것을 두고만 볼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누가 잘한다, 못한다 하든 말든 냅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금쪽같은 시간이 왔다가 가지 않는가, 가버리지 않는가. 그 세월 속에서 나는 길 잃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세월에 속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굳이 그 일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나는 집안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책 가운데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을 골라 마저 읽고 있다. 아는 이에게 책 읽는 이야기를 전에 했더니, “책 읽어서 무얼 할 건데?” 하고 핀잔 비슷하게 되묻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책을 벗하며 지내는 것이 내 남은 인생의 밭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농부가 밭고랑을 만들며 쟁기를 밀고 가는 모습에 나를 겹쳐 놓는다.

독서를 하는 것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보려는 나의 저항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구태여 말하면 독서를 통해 무상의 기쁨을 맛보며 시간의 흐름을 애써 잊어보려 하는 것이라고 할까.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꽃을 따라. 시간은 그침 없이 흐르고 오늘 미소 짓는 꽃도 내일은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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