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02.11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날마다 겨울을 보내기가 무척 힘들다. 날은 우중충하지, 풍경은 잿빛이지, 으스스하니 춥기도 하고, 어쩌다 나가 본 개울가에는 아직 얼음장이 희게 떠 있다. 기분이 계절의 영향을 받는가보다. 우울하다.

어디 나서기도 집안에 웅크리고 있기도 마땅치 않다. 게다가 연일 미세먼지로 자욱하다. 멀리 있는 산이 흐릿하다.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입춘이 지났으니 봄은 지금 올 채비를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벌거벗은 가로수 가지들을 유심히 바라보니 새 움을 솟아낼 눈들이 개구리 눈망울처럼 조금씩 볼록해져 있다. 멀리서 봄이 이 땅의 산과 들에 원격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갈 터이니 준비하고 있어다오.’

봄이 온다고 해서 딱히 무슨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래 못 보았던 푸른 잎들을 보고 싶다. 태양이 데워 놓은 따뜻한 공기,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새들의 비상, 꽃들의 개화, 이런 분주한 대지의 움직임을 그려본다. 그런 상상만으로 나는 깊은 숨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이 겨울 속에 봄이 잉태되어 있다가 아기를 출산하듯 그렇게 어느날 봄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고 보면 나 혼자만 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하늘과 땅, 바다, 강, 산, 나무, 새… 삼라만상이 봄을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흡사 배고픈 아이가 칭얼대듯 만상이 발을 구르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의 벌거벗은 모습이 춥고 쓸쓸한 인상이라면 봄은 그 모습에 새 옷을 입히고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계절이 봄이 아닌가 한다. 내가 지금 겨울을 탓하고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만은 아니다. 눈이 내려서 대지를 덮은 설경을 바라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겨울은 그 나름대로 나의 시야를 감동으로 새겨 주었다. 겨울의 침묵과 고요는 또 얼마나 진리의 깊은 체험을 안겨 주었는지. 그러나 멀리서 봄의 발자욱 소리가 들리는 이때쯤에는 겨울과 작별의 때를 기다리게 된다. 어서 봄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리라.

나보다 앞서 살았던 저 먼 선조들은 맨 처음 봄을 왜 봄이라고 불렀을까. 나는 하도 궁금해서 이 문제를 궁구해 보았다. 내 결론은 봄은 우리말의 ‘보다’(見)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으로 짐작하게 되었다.

만물이 새로 태어나는 것을 처음 본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득히 먼 선조들에게도 봄이란 얼마나 기다려지고 신나는 계절이었을까. 죽었던 나무들, 풀들이 부활하는 모습을 본 선조들은 나보다 더 봄에 놀라고 감격스러워 했을 것이다.

영어에서도 봄을 ‘스프링(spring)'이라고 하는데, 아다시피 스프링은 '봄', '용수철', '샘'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스프링'이라고 한 까닭은, 봄이 만물이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스프링‘ 하면 봄이 용수철처럼 툭 튀어나오는 듯한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봄의 눈부신 활동이 눈에 그려진다. 우리의 봄은 그보다 한 단계 비껴서서 봄이 스프링하는 것을 보는 계절이다. 같은 뜻이지만 살짝 그 결이 달리 느껴진다.

옛사람은 봄을 꽃 피고 새 우는 계절이라 했다. 아마도 이것은 평생 글을 쓰고 살았던 서생들이 남긴 말일 것이다. 쟁기로 대지를 갈아야 하는 농촌 사람들에겐 논밭에 고랑을 내고, 씨를 뿌리고, 소 치는 계절이라 봄맞이로 분주하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가사인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서도 봄을 이렇게 노래한다.

‘일년지계 재춘하니 범사(凡事)를 미리 하라./ 봄에 만일 실시하면 종년(終年) 일이 낭패되네./ 농기(農器)를 다스리고 농우(農牛)를 살펴 먹여/ 재거름 재워 놓고 한편으로 실어 내니/ 보리밭에 오줌치기 작년보다 힘써 하라./ 늙은이 근력 없어 힘든 일은 못하여도/ 낮이면 이엉 엮고 밤이면 새끼 꼬아/ 때 맞게 집 이으면 큰 근심 덜리로다.’

한 해의 계획이 봄에 있으니 모든 일을 미리 하라, 봄을 실기하면 한해를 망친다고 말한다. 봄을 보는 속에는 이같은 바쁜 준비와 노동이 포함된다.

나는 봄이 오면 그저 산천이 새옷 입는 것을 바라만 보고 말 것인가. 이 노래를 읽노라니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낮이면 이엉 엮고 밤이면 새끼 꼬아’가며 지낼 일은 없겠지만 그것에 방불한 일거리를 만들어 내 마음에도 새옷을 입히고 싶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