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청춘
예순 살 청춘
  • 문틈 시인
  • 승인 2024.02.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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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겨울을 한 번 더 보냈다는 이력을 말한다. 우리는 보통 처음 만난 사람이나 몇 번 만난 사이의 경우에 나이를 물어본다. 서양에서는 실례라고 하나 우리는 일단 나이부터 물어보고 동방예의지국의 예법을 챙긴다.

심한 경우에는 한두 달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형 취급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관습이 몸에 배었다. 나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민감한가는 정부가 지난해 ‘한국 나이’에서 ‘만 나이’로 통일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상은 만 나이로 치건 한국 나이로 치건 그 사람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말이다. 나이를 어떻게 셈하건 늙은이는 늙은이고, 젊은이는 젊은이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거나 젊게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도 있을 터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 대선에 나왔을 때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많다고들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김대중 후보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youth)이라는 시의 몇 구절을 TV에 나와 암송했다. 곧바로 이 시인의 시집이 간행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누 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꽤 긴 시인데 나이 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안겨주는 명시다.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 청춘일 수 있다고 하는 이 시를 쓴 것은 시인의 나이 78세 때였다.

우리나라는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로부터 ‘60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등 노인들을 폄하하거나 ‘노인들에게 지하철 공짜는 안된다’는 식으로 노인들을 천덕구리마냥 대하기도 한다. 이 시를 읽어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나이는 그 사람의 중요한 이력이다. 그 이력이 육체적인 나이가 많다고 무시되거나 폄훼되어서는 안된다. 나이란 엄혹한 추운 겨울을 지나온 이력이 그 사람의 내면에 켜켜이 쌓여 그를 지혜롭게, 현명하게, 명예롭게 한 것이므로 절대 홀대해서는 안된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그 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읽어볼수록 노인들의 마음을 청춘으로 되돌려 주는 듯한 시다. 난해하지도 않고, 지혜로운 구루가 들려주는 깨우침 같은 시다. 원래 이 시는 미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던 시였다. 2차대전 말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사령관이 사무실 테이블에 액자로 만들어 놓고 애송하던 시였는데, 한 종군기자가 이를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미국 잡지에 소개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노인들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만큼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 노인이라고 해서 다 ‘청춘’이라는 시가 가리키는 ‘늘 푸른 청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몸은 늙어가도 청춘의 기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용기백배하여 나이 든 이들도 거친 삶에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명장 맥아더 장군의 책상머리 액자에 담겨 장군의 심장을 뛰게 한 이 시 한 편을 나는 나이 들어가는 이 땅의 노인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고 싶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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