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65회]-노량 해전(1)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65회]-노량 해전(1)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05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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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11월 18일 밤에 이순신은 노량으로 가면서 군사들에게 나무재갈을 물렸다.

남해대교
남해대교

깊은 밤에 은밀하게 항진하기 위함이었다. 약 2시간에 걸친 이동 끝에 조명 수군은 자정 무렵에 노량수로 좌단 쪽에 도착하였다.
이때 진린이 이끈 명 수군은 좌협이 되어 대도섬 북방의 죽도 부근에 포진하고,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우협이 되어 노량수로 좌단으로부터 관음포 입구에 횡렬로 진을 쳤다.
조명 수군은 닻을 내리지 않고 일본 구원 함대가 건너올 노량해협을 주시했다.

자정 무렵에 이순신은 대장선 갑판에서 손을 씻고 무릎을 꿇고 향을 피웠다.
그리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 적을 모두 죽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此讐若除 死則無憾)”

이윽고 척후선으로부터 왜군 함선 수백 척이 사천 남쪽에 있는 광주양(光州洋 노량 수로 동단의 외양)을 통과하여 서쪽 노량방면으로 향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복병장으로 나가 있던 경상우수사 이순신도 왜군의 진입을 확인하고 급보를 보냈다.
왜선 500척 중 시마즈의 선발대 300여척이 먼저 노량(현재 남해대교 근처)으로 진입한 것이다.

노량 해전은 왜군의 조총 사격으로 시작되었다.
선봉에 있던 조명 수군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명나라 도독 진린은 도독기를 높이 올린 다음 북을 크게 올리면서 진격명령을 내렸다.
이순신도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적의 선열 중간 부분을 돌격해 들어갔다. 11월 19일 새벽 2시경이었다.

해전이 시작되자 조선 수군은 천자 ·지자 화포 등 각종 화포를 쏘았다. 명나라 수군도 호준포(虎蹲砲)·위원포(威遠包)·벽력포(霹靂砲 벼락, 천둥소리 나는 포)를 일시에 쏘았다.

한밤중에 치러진 노량해전은 과거 다른 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1천여 척에 달하는 조선과 명나라 그리고 일본의 함대가 서로 엉켜 싸운 격렬한 동아시아 최대 해전이었다.

그런데 바람은 조명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불었다. 전투가 한창일 때 북서풍이 강하게 불자, 바람을 등진 채 싸운 조명연합수군은 화공전(火攻戰)을 구사하였다. 화전(火箭 불 화살)을 쏘고 불붙은 섶을 던져 왜선을 불 질렀다. 조명 연합 함대의 화공 전법에 무수한 왜선이 불탔다.

지척이 보이지 않는 전투가 계속되면서 조선 수군 장수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 싸웠다.
가리포 첨사겸 조방장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현감 고득장, 순천부사 우치적, 안골포 만호 우수, 사도첨사 이섬 등의 활약이 돋보였다.

가리포첨사 겸 조방장 이영남(1563-1598)은 자기가 탄 배를 몰아 왜선을 충격하고 불화살을 수없이 쏘아 왜선을 무력화시킨 뒤 군사를 거느리고 왜선에 뛰어올라 여러 명의 적을 죽이다가 유탄에 맞아 쓰러졌다. 부하들이 그를 구해냈지만 이영남은 전사하고 말았다. 나이 35세였다.

낙안군수 방덕룡은 삼지창을 옆에 끼고 왜선에 뛰어올라 닥치는 대로 왜군을 죽이니 부하들도 뒤따랐다. 그 역시 왜적을 물리치다가 전사했다.

흥양현감 고득장은 군관 이언량과 앞다투어 왜선에 뛰어들어 왜적을 참하다가 역시 전사하였다.

순천부사 우치적은 적장 한 사람이 대궁을 휘어 잡고 지휘하는 것을 보고 쏘아 죽였다.

안골포 만호 우수는 사도 첨사 이섬과 서로 신호하면서 대포와 불화살을 쏘았으며 대장선 이순신의 배를 찾아 호위하였다.

명나라 수군의 활약도 돋보였다.
70세의 노장인 부총병 등자룡은 조선의 판옥선 1척을 빌려 타고 선두에서 수많은 적을 죽였다.
그러다가 혼전 중에 뒤에서 쏜 명군의 포탄이 잘못 맞아 등자룡이 탄 배가 불타기 시작했다. 등자룡의 군사들은 한곳에 모여 불을 피하면서 싸웠는데, 왜군이 배에 뛰어올라 백병전을 벌인 끝에 등자룡은 중상을 입고 부하들도 다수 다쳤다.
이윽고 등자룡도 전사했다.

유격 계금은 왜교성 전투에서 부상 당한 왼쪽 팔을 동여맨 채 오른 손에 미첨도를 들고 왜적 7명을 참살하였다. 부총병 진잠은 진린의 배를 호위하면서 진격하여 호준포와 위원포를 쏘았는데 왜선에 명중하는 소리가 먼바다에 까지 들릴 정도였다.

한편 이순신과 진린은 서로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하기도 하였다.
전투가 한창일 때 왜적이 이순신의 배를 에워싸자 진린이 포위망을 뚫고 대포와 화살로 적선을 무찔렀다. 다른 한편, 왜적이 진린의 배를 세 겹으로 포위하여 배에 뛰어오르려 하자, 이순신과 안골포 만호 우수, 사도첨사 이섬이 왜선에 불이 옮아붙게 하여 진린의 배를 구하였다.

이렇게 조명연합수군이 화포를 쏘고 화공전을 격렬하게 펼치자 왜군은 마침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왜군은 관음포 포구가 바다로 나가는 출구로 오인하고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그런데 한참 노를 젓다가 왜군은 퇴로가 막힌 것을 알았다.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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