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가 남긴 빈 둥지
작은 새가 남긴 빈 둥지
  • 문틈 시인
  • 승인 2023.12.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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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창 바로 앞에 모과나무가 한 주 서 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겨울이 오자 잎새들은 낙엽이 되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맨 몸으로 드러나 있다.

이제 보니 빈 나뭇가지에 손바닥을 오무린 크기의 작은 새 둥지 하나가 동그마니 얹혀 있다. 나는 아파트 바로 앞 나무에 새 둥지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저 작년보다 덜 열린 모과열매가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가끔 바라 보았을 뿐이다.

새들은 푸른 잎새들이 우거져 있을 때 들락날락하며 모과나무에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새끼를 기르고 했던 모양이다. 둥지의 크기로 보아 아마도 아주 작은 새들이었던 것 같다. 한 쌍의 새들은 둥지를 짓느라 열심히 잔 나뭇가지들을 물어나르고, 둥글게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열심히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 날랐을 것이다.

새들이 그런 대공사를 바로 거실 앞에서 벌이는데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여름 큰 바람이 불고, 장마가 질 때 새들은 모과나무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해 본다. 새들은 감쪽같이 외부에 그들을 노출시키지 않고 일 가족을 건사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오직 모과나무만이 새로 태어난 새들의 가족을 안전하게 감싸고 있었다니,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일찍이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는 “어린 시절 새 둥지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 지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지 않고 자란 사람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동무들과 함께 뒷산 숲속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 새 둥지 속의 알록달록한 알들을 들어 조심스레 만져보고 도로 놓아두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푸른 보리밭에서 꿩알을 줍던 일도 떠오른다.

나는 거실 바로 앞 모과나무에 새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길렀던 빈 둥지를 바라보면서 어디론가 가족을 데리고 떠나갔을 새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장하다, 대단하다, 너희는 성공했다. 새들은 그렇게 산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과 어울려 자연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성서의 한 귀절이 쟁쟁하다. 자연은 그렇게 한 쌍의 새들이 가족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 모를 새들이 남겨 놓은 빈 둥지는, 내게 두고는 삶에 대한 자랑스런 상징이요, 성공을 이룬 징표로 보인다.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지키고 보살피느라 다들 힘들게 살아간다. 그 힘듦이 눈물겹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힘이 들어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빈 둥지의 주인이었던 새들과 견주어 볼 때 새들이 참 부럽다. 나는 빈 둥지를 바라보며 자연과 좀 더 가깝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삶이란 억지로 아둥바둥할 것이 아니다. 죽을 둥 살 둥 애닳아 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날마다 물방개처럼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닌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이 발 뻗고 살 집 장만을 하려고 쉴 틈 없이 일한다. 일하고, 일하고, 일한다.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도 애잔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새들은 인간들처럼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일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늘과 땅의 도움을 얻어 조상 대대로 해오던 대로 사는 것 같다. 뭐랄까, 단순한 삶, 단순한 목적을 위해서.

벌거벗은 모과나무가 마치 제 것이라도 된 양,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라는 듯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빈 새 둥지를 쳐들고 있는 모습이 내게 무엇인지 모를 감정을 일으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 빈 새 둥지에 내 마음이 올라가 있다. 새가 알을 품을 때처럼 내 마음은 살포시 빈 새 둥지를 품고 있다. 거기서 하늘을 보고 땅을 바라본다. 삶이 무엇인지 말하라면 나는 말없이 저 빈 새 둥지를 보라 할 것이다.

지극히 선한 것에 보내는 나의 찬미는 멈출 수가 없다. 내년에도 모과나무에 새들이 날아 올 것인가. 온다면 빈 둥지를 고쳐 쓸 것인지, 새로 둥지를 지을 것인지, 새들이 사는 모습을 몰래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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