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感氣)
감기(感氣)
  • 문틈 시인
  • 승인 2023.12.0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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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근 열흘 가까이 코를 풀고 기침하고 전신 무력감에 시달렸다. 여러 해 동안 감기에 걸리지 않고 지냈는데 며칠 전 사람들이 가득한 전철에 탑승하고, 병원에도 가고, 멀리 이동하고 이랬더니 어디선가 감기가 옮겨온 것 같다. 요즘 감기환자가 에년보다 여섯배나 많다는 보도가 있는걸 보면 조심하지 않은 탓이다.

다행히 지금은 거진 나은 셈인데 아직 뒤끝이 조금 남아 있다. 감기는 가장 흔한 병이다. 흔히 날씨가 추우면 잘 걸리는 병으로 알고 있으나 여름에도 감기에 걸린다. 코로나도 독감도 아니어서 푹 쉬고 약 먹고 지내다 보니 그럭저럭 나아진 듯하다.

감기(感氣)는 수많은 병 이름 가운데서 가장 철학적이고 시적인 병명을 갖고 있다. 우리 몸이 천지의 신비한 기운(氣)을 느끼는 것(感)을 감기라고 나는 풀이한다. 천지의 미묘한 어떤 기운을 내가 접했을 때 그 기운이 몸으로 들어와 우주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즉, 몸의 감수성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감기는 감기 바이러스가 옮긴다. 갑자기 따뜻한 곳에 있다가 찬 곳으로 이동했을 때,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감기 바이러스가 세력을 얻어 코로, 목으로, 그리고 기관지로 들어가 진지를 구축하다가 더 세력을 얻으면 폐로 가서 야단법석을 떤다. 이때부터 몸은 된통 혼이 난다.

감기는 만병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억 개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 똬리를 틀고 진영을 구축하고 내 몸의 방어군과 싸우노라면 그때부터 나는 콜록콜록 기침하고, 밥맛도 없어지고, 잠도 잘 못자고, 호된 시련을 겪는다. 여기서, 자칫 대처를 소홀히 하면 다른 큰 병으로 번질 수도 있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셨을 때 나는 늘 목욕탕에 가시면 몸의 더운 기운이 가라앉고 바깥 온도와 큰 차이가 없어질 때 바깥으로 나오시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보통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더운 기운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바로 나오는 일이 흔한데 이럴 때 몸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감기에 걸리기 쉽다.

우리 몸은 강한 것 같지만 눈에 안 보이는 바이러스에 취약할 정도로 몹시 약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천지사방 어디에나 있다. 공기 중에, 엘리베이터 단추에, 전철 손잡이에, 먹을거리에, 악수하는 손에, 없는 곳이 없다. 어쩌면 우주 만물이 바이러스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내가 한동안 절에 머물고 있을 때 알고 있던 한 주지 스님은 내게 설법하듯 말했다. “손이 만병의 근원이야.”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모든 병이 손끝에 묻어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항상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권한다.

내가 감기에 걸린 연유를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코로나에 긴장을 풀고 함부로 군중 속으로 들어가 섞여 사는 것을 보고 내가 잠시 해이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천지의 미묘한 기운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감기. 그러나 "감기는 병원에 다녀오면 7일 만에 낫고, 다녀오지 않으면 1주일 만에 낫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쉬 낫는 병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같이 좀 나이가 든 사람은 감기에도 그저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랜만에 먼 곳에 사는 동생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잘 지내시요?” “야, 말도 마라. 감기 때문에 혼났다.” “코로나도 그냥 넘어가 놓고 먼 감기라요.” “야, 얼른 끊자. (콜록) 전화로 감기 균이 옮겨가겠다.”

자연주의 사상가로 유명한 ‘월든’의 작가 소로우는 어느 겨울날 아침, 베어낸 나무의 나이테를 세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 나이 45세 때다. 감기는 위대한 사상을 설파한 자연주의자도 가만두지 않는다. 사실 감기에는 약이 없다. 그저 열 내리게 하고, 가래 삭이는 정도이지 치료제는 아니다. 몸 스스로 조심해서, 잘 먹고, 잘 자고, 손 잘 씻고, 하는 것이 예방이요, 치료다.

나처럼 겁이 많은 사람이나 감기에 신경을 쓰지 대체로 사람들은 감기가 왔다하면 뜨거운 콩나물국에 고춧가루 듬뿍 넣어 마시고 몇 번 콜록 하고 넘어간다. 감기에 불평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이 부럽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이렇게 쓴다.

‘삶이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회피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듯, 삶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불평 많은 사람은 낙원에서도 불평만 늘어놓을 것이다.;

감기에 불평을 그만두고 이 시적인 이름의 병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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