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붕당 정치
K-붕당 정치
  • 문틈 시인
  • 승인 2023.11.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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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지인과 통화를 할 때는 늘 정치 이야기가 화제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서민들이 힘들어한다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이놈의 정치가 잘못해서’라는 말이 나올까 봐 얼른 대화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식이다.

코로나와 전쟁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여기까지는 두 사람이 별 문제 없이 대화를 이어가는데 물가를 못잡는 대통령은 탄핵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나는 전전긍긍한다.

내가 대통령을 두둔해서가 아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바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늘 이랬다.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문제는 정치적 견해가 대립하여 말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자칫 서로 감정을 상할 수도 있어 정치 이야기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특히 요즘처럼 국민 간에도 지지하는 정파에 따라서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판에는 입 조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옛말에 궐 밖에서는 임금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구태여 일개 시민으로 대통령, 국회의원들을 욕해봤자 내게 돌아오는 게 무엇이 있는가.

날마다 장을 보러 마트로 가는 인도의 보도블록들이 빠져 있고 깨져 있어 걷기에 불편한 것이 내게는 더 큰 문제일 뿐, 국정에는 거의 안면몰수한 정치꾼들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도 역겹다. 흔한 말로 정치인은 개천이 없는데도 다리를 놔주겠다고 떠드는 사람이라지 않던가.

내가 현실 정치에 대해서 지독하게 염증을 느끼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며 90도 각도로 절을 하면서 표를 달라고 했던 사람들이 국회만 들어가면 저자의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한심한 작태를 부리는 꼴이 눈꼴사나워서다. 정말 국민 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마침 다른 지인의 딸이 박사학위 논문을 보내 주어서 읽는 중인데, 학위논문 제목이 ’18~19세기 붕당 의식의 사회문화적 재생산과 확산’(윤민경)이라서 더욱 내 관심을 끌었다. K-붕당 정치는 예로부터 인삼과 함께 이 나라의 특산품인 것 같기도 하다.

5년간이나 각종 사료, 인터뷰, 문헌 공부를 통해서 완성했다는 이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가지 상념에 젖어 들었다. 논문은 붕당 정치가 심해져 ‘붕당은 더 이상 재래의 정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족 개개인이 경험하는 일상의 다양한 부문에 투영되었다.’라고 썼다.

또 논문은 ‘이는 붕당 구성원으로 하여금 다른 당색과 차별화함으로써 배타적 동류의식을 강화하게 해주는 요소’가 되었으며 ‘붕당은 정파였을 뿐만 아니라 붕당별로 고유하게 수립된 문화적 상징을 이해하고 이를 창출 및 공유하는 문화적 공동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정치 사회 상황과 빗대어 보면 엇비슷한 논변으로 읽힌다. A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B당을 지지하는 사람 간에는 안 보이는 벽이 쳐져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선의 붕당 정치와 그닥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며칠 전 아내가 오랜만에 옛 대학 친구를 만나서 트래킹을 하고 와서 하는 말 중에 “난 네가 B를 지지 않아서 너무 좋다”고 했다고 한다. 둘이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가 나왔는데 같은 정파(우익이건 좌익이건)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심리적으로 동류의식을 느꼈다는 말이다. 학위논문에서 기술하고 있는 같은 붕당이 아니면 결혼도 하지 않는 그런 시대 의식과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적어도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정책 대결을 두고 대립하지, 하찮은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 국민의 귀를 더럽히지 않는다. 적어도 막말해서 국민의 심사를 어지럽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어서 듣도 보도 못한 상스러운 막말로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 것이 대수롭잖은 일로 되어 있다. 나는 그저 허유(許由)와 소부(巢父)처럼 귀나 씻으면서 못다 읽은 책이나 읽고, 이 나라 정치판 같은 죽도 밥도 아닌, 선출된 붕당 같은 데는 관심을 끄고 싶다.

지금 세계는 미래의 판도를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기술 경쟁으로 난리인데 어떻게 된 셈인지 이 나라에서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정치는 기업을 발목 잡고, 정치는 교육을 막아서고, 정치는 청년을 기죽인다. 바야흐로 정치공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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