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돈 꾸기
은행에서 돈 꾸기
  • 문틈 시인
  • 승인 2023.11.0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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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돈이 필요했다. 5천만원까지는 아니고 그 어간 어디쯤 되는 액수다. 은행에 가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집이 있고, 연금도 나오고, 빚도 없으니, 집을 담보로 금방 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다.

은행에서 돈 꾸기는 꿈에 떡 얻어먹기보다 어려웠다. 게다가 이자가 연 5퍼센트를 훌쩍 넘었다. 완전 고리대금이었다. 난 살면서 별로 크게 느껴보지 못한 돈이라는 물건에 대해서 한참 생각해보았다. 그건 귀한 것이다. 그건 요긴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필요할 때는 가까이 있지 않고 멀리 있는 것이다, 등등.

은행이 요구한 서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여튼 여기에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여러가지 잡다한 서류들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고도 돈이 내 손에 들어오려면 3, 4주 이상 걸린다고 했다.

망건 쓰다 장 파하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다른 은행들은 사정이 좀 나을지 몰라 여러 곳을 들러 보았는데 비슷했다. 요컨대 을 중에서도 아주 약한 을이 되어 갑 중에서도 매우 강한 갑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과잉 독과점 행태를 비판한 적이 있다. 경제시스템을 잘 모르는 내가 생각컨대 걸핏하면 돈 꾸어 주었다 수십 억, 수백 억씩 떼이기도 잘 하는 은행이 채무 변제가 확실한 나같은 서민한테는 문턱이 너무 높고 이자도 겁나게 비싸다.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외환위기 때는 우리 세금으로 그들 은행을 망하지 말라고 구제해주지 않았던가. 정권은 바뀌어도 은행의 고자세는 변하지 않는다. 은행은 태생부터 코가 높아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가보다. 듣기로 은행 직원들은 연봉이 1억원 안팎이라고 한다.

은행업무는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만 할 줄 알면 업무를 지장없이 해낼 수 있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일이다. 옛날엔 상업고를 졸업하고 들어가서 일했다. 지금은 컴퓨터가 나와서 주판 튀길 필요도 없고, 기계가 세어주므로 침을 묻혀 손가락으로 돈을 셀 필요도 없다. 옛날보다 일이 훨씬 쉬워졌고 편해졌다. 대부분의 업무가 전산화가 되어 있어 업무도 정확해지고 완벽해졌다.

은행은 그들의 수익을 더 올리려고 지점을 많이 줄였다. 한번 은행을 가려면 이젠 멀리로 나가야 한다. 가서 번호표를 뽑고 한 시간 안팎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열기운이 뻗쳐서 한번 헤아려 보았다.

은행 창구에 있는 직원 한 사람이 오전 시간에 20명을 처리했다. 하루 근무 시간 다 합해도 40명이 넘을까말까다. 그런 정도의 업무는 속된 말로 널널한 편이다. 우리 같은 은행 이용자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간단한 업무는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다 처리하는 것이 대세이므로 은행 업무 부담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점도 줄이고, 직원도 줄이고, 대기줄은 길어지고, 대출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시스템인 것 같다.

은행 직원들이 받는 보수가 많다고 시비할 생각은 없다. 수십, 수백 억씩 떼이는 일마저도 거론하지 않겠다. 이 생전 처음 은행에 가서 작은 돈을 꾸어달라는데, 무슨 서류는 그렇게 많이 요구하고, 또 기다려라는 왜 그리 오래인가.

나는 도통 은행이라는 괴물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민주국가에 그런 시스템을 가진 ‘갑’이 군림한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보너스다 뭐다 해서 툭하면 돈 잔치를 벌이는 은행은 서민들 편에서 업무를 되새겨 볼 일이다.

은행은 자기들이 땅 파서 돈을 벌어가지고 그 돈으로 나 같은 돈 꿔달라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고객들이 은행에 맡겨둔 돈, 한국은행에서 빌린 돈에 싼 이자를 주고 가져와 나처럼 돈 꿔달라는 사람한테 비싼 이자를 받고 꾸어주는 것이다. 그것도 갑질을 하면서 말이다. 뭐가 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런 나라에서 일정한 금액 미만의 돈을 담보와 신원보증 없이, 하위 25%의 사람에게만 대출해 주는 그라민은행이란 것이 있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준 뒤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갚아나가도록 하는 소액 장기처리 신용대출 은행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 사태 이후로 돈이 필요한 소상공인, 서민들이 많아졌다. 이들을 위한 은행 문턱을 낮춘 특별은행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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