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추억
가을날의 추억
  • 문틈 시인
  • 승인 2023.10.2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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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낙엽들이 흩날리고 있다. 봄 여름 가을 무성하던 나무의 푸른 잎들이 이제 할 일을 마치고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다. 비 오고 바람이 불면 우수수 낙엽들은 마저 떨어져 길을 덮을 것이다. 봄에는 피어난 꽃들이 그렇게도 아름답더니 가을은색색깔로 물든 낙엽들로 풍경이 찬란하다. 

봄꽃, 가을열매를 거쳐 가을걷이를 마치고 한해는 기울어 파장 분위기다. 가을이 저물면 겨울이 오려니, 하나 겨울은 번 외의 계절이다. 빈 들판을 보라. 사실상 한해의 끝은 가을이다. 낙엽들이 허공에 흩날리는 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언제까지나 푸르름으로 생기를 내뿜을 것만 같던 계절은 저물고 잎새들은 나무들로부터 뿔뿔이 떠난다. 천지의 기운이 다한 듯한 모습이다.

우리의 시인 조병화는 낙엽을 이렇게 노래한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고. ‘낙엽에 누워 산다./낙엽끼리 모여 산다./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낙엽이 지는 하늘가에/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낙엽끼리 모여 산다./낙엽에 누워 산다./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낙엽끼리 모여 산다’)

시에서 낙엽과 나는 동의어처럼 여겨진다. 떨어진 낙엽들이 모여서 바람에 불려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낙엽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 가보고 싶어진다. 거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낙엽들은 그 곳에서 낙엽들끼리 모여 산다니. 가을에 나를 늘 한 잎 낙엽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시다.

가을이 도시를 떠날 때쯤이면 나는 잊지 못할 낙엽에 관한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쓸쓸하다. 그 날도 서울살이에 지쳐 집으로 가는 퇴근 버스를 여러 대 보내고 빈 자리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툭, 하고 내 어깨를 쳤다. 순간 나를 잘 아는 사람인가 싶었다. 나를 놀래키려고 정답게 내 어깨를 뒤에서 친 것이라고. 반갑게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때 내 발밑으로 플라타너스 커다린 잎새가 하나 내 어깨에서 떨어졌다. 가로수 밑에 외롭게 서 있던 나를 플라타너스 잎새가 내 어깨를 스치고 떨어지며 내게 떠나가는 가을의 인사를 전한 것이다. 플라타너스 잎새를 주워들고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마른 핏줄 같은 잎맥이 도드라진 한 잎 낙엽이 내게 안녕, 하는 것만 같았다.

대학로 어느 버스정류장 길거리에 낙엽을 도로 내려놓고 나는 슬픈 마음이 되어 만원버스에 올라탔었다. 왜, 그날의 그 기억, 그 가을잎새가 잊혀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컨대 가을은 우리집의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보다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는 허공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홀가분해진 가을 뒤끝의 풍경을 언어로 붙잡아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을 풍경은 언어 너머에 있다. 내가 혀 짧은 말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는,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가을을 바라본다. 이럴 때 울면 안될 일이다. 세상살이에는 울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울어서는 안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혼자 있을 때면 어깨를 들먹이며 실컷 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결국 인생에도 가을이 가면 한 잎 낙엽처럼 사람도 떨어져 갈 날이 올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습은 실로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일대 서사가 아닐 수 없다. 낙엽지는 풍경 속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그리고 한없이 쓸쓸한 마음으로, 나는 나를 추스린다. 내가 나를 껴안아 주지 않으면 이 천지간에 누가 나를 안아 줄 것인가. 두 팔로 내 몸뚱어리를 힘주어 안아본다.

얼마 전 작고하신 이어령 씨가 문화부장관으로 있을 때 가을이 오자 가로수길의 낙엽을 쓸지 말라고 했다. 도시의 시민들로 하여금 낙엽을 밟으며 가을의 쓸쓸함을 감상해 보라 한 것이었을까. 가을을 타는 사람은 눈물이 많은 착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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