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피서법
집 안 피서법
  • 시민의소리
  • 승인 2023.08.0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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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더워 불볕더위에 숨진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매일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뉴스에 체감온도는 40도에 이르면서 마치 화덕 옆에 있는 느낌이다. 나는 코로나가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는 데다 피서를 한답시고 바닷가나 산 계곡으로 가는 그 과정을 감당하기 귀찮아 여름에는 주로 집 안에서 지낸다.

내 피서 방법은 집 안에서 내 나름대로 피서 요령을 부려 지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요령이란 간단하다. 자주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앉아서 책을 읽는다.

에어컨은 거의 틀지 않는다. 비싼 요금도 부담스럽지만 천식에는 찬 바람이 좋지 않아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책이라고 하는 가상공간에 들어가 무더운 여름을 잊어버리게 된다. 추리소설도 좋고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읽었던 책들을 꺼내 읽는다.

이제 나이도 들어 읽고 나면 잘 까먹긴 하지만 그래도 부러 읽는다. 내 피서법을 지인에게 말했더니 “책을 읽어서 어쩌려고요?” 하고 반문한다. 나이도 들었는데 굳이 품을 팔아 책을 읽어서 그 나이에 어디에 쓰겠느냐는 질문이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쉬고 있는 뇌를 활성화하고 나아가서는 책을 쓴 작가나 저자와 소통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말하자면 독서는 사고실험에 가까운 가상세계와의 소통인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 일찍 대개 6시 반쯤인데 개천가를 40분쯤 걷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날마다 무더위가 지속하고 있지만 아침 일찍에는 걸어도 그다지 덥지 않다. 서늘한 새벽 기운이 남아 있어 오히려 상쾌하다. 집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운동부족으로 건강에 안 좋다 하니 하루 한 번은 반드시 걷기를 한다.

물론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만 읽는 것도 아니다. 참외, 수박 같은 여름 과일을 사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한 조각씩 깎아 먹는다. 이 정도면 더위를 피해 지내는 아주 간소한 피서법이라 할 만하다.

남에게 내 식의 피서법을 권유하기는 뭣 하지만 더위를 먹지 않고 여름을 지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독서가 물리면 유튜브를 틀어놓고 우주의 신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우주에는 수 조개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마다 수 조개의 별이 있고, 우리 지구가 속한 은하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있다.

그중에 어느 별 하나에 인간과 함께 온갖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지구라는 우주먼지 같은 작은 별에서 말이다. 이런 이야기에 나는 한 개의 점에 불과한 지구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동적이며 신비를 느낀다. 생각할수록 더위가 싹 가신다.

불볕더위는 태양이 지구를 성가시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살리려는 자연법에 따른 현상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여름에 뙤약볕이 내리쬐어야 지구는 산다. 인간에게는 무더위지만 자연의 생명체들, 특히 열매 맺는 식물이나 채소들에는 영양제이다. 강렬한 햇볕이 없다면 벼나, 사과, 포도 같은 곡식과 과일들이 여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햇볕을 먹을 수 없으니 햇볕을 취한 채소나 과일, 곡식을 통해 우회해서 햇볕을 먹는다. 인간에게는 불볕더위지만 채소나 과일들에는 은총이다. 릴케는 시에서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라고 간구한다. 시인의 기도에 답하는 전 우주의 약속이 한여름의 작렬하는 태양볕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뜨거운 여름에 대해서 불만이 없다. 어떤 이는 태양이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며 인간은 분명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고 한다. 모든 생명체 가운데 인간만이 태양을 눈으로 바로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 증거라는 것.

어쨌든 나는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여름을 잘 넘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서를 간다 어쩐다 하고 요란을 떨지 않고, 가을이 빨리 안 온다고 발을 구르지도 않는다. 분명 여름은 아직 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다. 여름이 가을에게 과실을 건네주려고 곳곳에서 대공사가 지금 한참 진행 중이다. 나는 여름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며 집 안에서 한여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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