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 - 8회 이순신, 조정으로부터 경상도 출전 명령서를 받다.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 - 8회 이순신, 조정으로부터 경상도 출전 명령서를 받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 승인 2022.08.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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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26일에 이순신은 좌부승지의 서장을 받았다. 20일에 작성된 서장에는 “일본군의 후방 교란을 위해 신중하게 출전하되, 조정은 멀리서 지휘할 수 없으니 현지 지휘관의 판단에 맡길 따름이다. 경상도에 공문을 보내 서로 의논하여 조치 하라.”는 다소 애매한 명령이었다.

이러자 이순신은 일개 좌수사로서 마음대로 처리하기가 어려우므로 전라관찰사 이광, 방어사 곽영, 병마절도사 최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경상도 순변사 이일 · 경상 관찰사 김수 · 경상우수사 원균에게도 경상도의 물길 사정과 두 도의 수군이 모이기로 한 약속장소와 적선의 수, 현재 정박하고 있는 곳등 여러 가지 기밀을 급히 회담하라고 통고했다. 이어서 이순신은 각 관포에도 출전 준비를 철저히 하여 명령을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27일 새벽 4시에 선전관 조명이 가져온 좌부승지의 서장을 또 받았다. 그 서장은 23일에 작성된 것이었다.

“원균의 장계를 본즉 각 관포의 수군을 이끌고 적선을 엄습할 계획이라고 하니, 원균과 합세하여 적선을 쳐부순다면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전관을 급히 보내어 이르니, 그대는 각 포구의 병선들을 거느리고 급히 출전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하라. 그러나 천 리 밖이라 혹시 뜻밖의 일이 있을 것 같으면 그대의 판단대로 하고 반드시 명령에 구애받지는 말라”

이는 전라좌수군의 경상도 출전 명령서였다. 이순신은 5관 5포에 4월 29일까지 본영 앞바다로 일제히 도착하라고 급히 명령하였다.

이어서 이순신은 ‘구원하러 출전하는 일을 아뢰는 장계’를 조정에 보냈다. 이는 ‘임진장초’에 수록되어 있다. (4월 23일부터 4월30일까지 난중일기는 빠져 있다.)

4월 29일 자시(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원균의 회신을 받았다.

“적선 500여 척이 경상도 연해를 거의 다 점령하였으며 경상우수영(거제도 소재)도 이미 점령되었습니다. 두 도가 합세하여 적선을 공격하면 상륙한 왜적들이 후방을 염려하여 사기가 떨어질 것이니 당포 앞바다로 급히 나와야 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이순신은 소속 수군을 다음과 같이 편성하였다.

중위장(주력부대의 중간에서 부장들을 통솔하는 장수) 방답첨사 이순신

좌부장 낙안군수 신호

전부장(前部將 전방 부대장) 흥양현감 배흥립

중부장(中部將) 광양현감 어영담

유군장(유격부대장) 발포 가장(假將:임시지휘관)이자 본영의 군관인 훈련봉사 나대용

우부장 보성군수 김득광

후부장 녹도만호 정운

좌척후장(좌측 정찰부대장) 여도권관 김인영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

한후장(후방 경계부대장) 영 군관 최대성

참퇴장(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부대장) 영군관 배응록

돌격장 영군관 이언량

이어서 이순신은 ‘4월 30일 새벽 4시에 출전할 예정이므로 경상우도 소속이면서 본영과 이웃하고 있는 진인 남해현 미조항 ·상주포 · 곡포 · 평산포 네 진의 현령·첨사·만호들에게 전선을 정비하여 중간까지 나와서 기다리라’는 비밀 공문을 4월 29일 새벽에 전령에게 주어 급히 보냈다.

그런데 29일 오후 2시경에 전령으로 보냈던 본영의 진무인 순천 수군 이언호가 급히 돌아와서 보고했다.

“남해 고을 성안의 관아와 민가들이 모조리 텅 비었고, 성안의 군사들이 왜적이 가까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도망가 버렸고 심지어 현령과 진장까지 도망갔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망연자실했다. 더구나 남해가 비었다는 소문만으로 도망자가 두 명이나 생겨 이순신은 이들을 잡아와서 군중(軍中)에 효시하여 군사들의 동요를 막았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이순신은 4월 30일에 출전을 늦추는 장계를 조정에 올렸다.

“경상도로 나아가 싸우는 사정이 급박하기는 하지만, 남해의 평산 등 네 진의 진장과 현령이 적의 얼굴도 보기 전에 먼저 달아나 버렸습니다. 전라좌수군은 경상도 물길을 잘 알 수 없고, 물길을 인도해 줄 배도 없고, 작전에 호응해줄 장수도 없으므로 가벼이 출동하는 것은 걱정이 됩니다. 더구나 전라좌수군 전선 30척 만으로는 세력이 약합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전라관찰사 이광도 이미 전라우수사에게 소속 군사를 거느리고 합세하라고 지시했으니, 전라우수군이 본영에 오면 함께 출전하겠습니다.”

거북선 모형 (서울 광화문 ‘충무공 이야기’ 전시관)
거북선 모형 (서울 광화문 ‘충무공 이야기’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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