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단상-노영필]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왜 투표해!
[학교단상-노영필]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왜 투표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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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광주 운남중 교사]

"투표하러 안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저희들끼리 다 해먹으라 해요. 투표하러 안 갈래요."

가까이 사는 이에게 투표하러 가자 했더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대답이다. 전화를 걸었던 나는 오히려 무안해졌다. 그가 교사이기에 더욱 그랬다. 아이들에게 투표야말로 민주주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통로라고 이야기해야 할 그마저 냉담한 반응이었으니 말이다.

투표 다음 날, 예상했던 대로 전국 투표율 48% 역대 최저, 광주지역 40.7%로 유권자 두 사람 중 한 사람도 채 투표하러 가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월드컵에 눈을 묻은 사람이나, 낚시터로 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할까? 우문우답(愚問愚答)이 명쾌하다. "내 탓은 아니다. 그들이 썩어서 그런 것이다."

우리들의 삶과 정치가 언제부터 이렇듯 따로 놀고 있는 것인가! 정치 활동의 중심인 의회에서 세금을 정하고, 법규를 만들고, 우리들의 생존권을 쥐락펴락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 터인데 말이다.

왜 정치를 이토록 혐오스런 것으로 내몰아 놓고 그 앞에서 우리는 움츠려드는가! 독불장군처럼 홀홀단신 살아 낼 비법을 간직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왜 우리는 각자의 정치권력을 포기하는가.

나약한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나는 괴롭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공성을 가르쳐야 할 지 손에 힘이 쑥 빠진다. 금권타락 선거를 어떻게 설명하며, 50%를 밑도는 투표율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냥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말해야 할까.

   
부패한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어른들의 심약한 모습이라고 설명할까. 속이 훤히 보이는 멋쩍은 변명이다. 더욱이 하루를 임시휴일로 쉬면서까지 투표를 하는 명분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나마 월드컵이 있어 아이들에게 이런 속사정이 들통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들에게 더 부끄러운 일은 7월에 있을 교육위원회 선거다. 이권을 위해 가장 안정된 자리가 교육위원 자리였던가? 시내 학교운영위원인 한 아는 이는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수십 만원을 들고 찾아와 한 표 부탁하는 바람에 입장이 난처해졌다고 한다.

그러고도 이 지역의 교육현안을 논하겠다는 그들의 뻔뻔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그들에게는 교육현장의 문제점보다 학교시설관리와 관련된 잇속과 음험한 뒷거래의 잿밥이 초미의 관심사인 것 같다. 누가 교직을 성직이라고 했던가! 아! 교육현장 마저 금권이 판치는 이 현실에서 더 이상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양심을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

지방선거가 꼴사납듯이 교육위원회선거도 교육감선거도 오십보 백보일 것 같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교육위원회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 이미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은 법으로 금지한 선거운동을 한 지가 오래다. 누가 흘린 개인 정보인지 출마 입지자들로부터 몇 번씩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날아든다.

여기저기 향응과 끼리끼리 접대가 자랑꺼리처럼 입에서 입으로 번지고 있다. 출마자들이 50∼100만원씩 유권자인 운영위원에게 기부(?)하고 있으니 바야흐로 학교운영위원회가 발전할 수 있는 물때를 만난 것인가!! 차라리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가르치지 않아야 옳을 일이다.

어른들이여! 부끄러움을 깨닫고 위선의 광대짓을 그만 두자. 선거를 외면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비오는 하늘을 가리려는 일이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하는 어리석음이다. 교단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바로 돈으로 해결하려는 부도덕한 출마자들이라는 것을 밝혀내자. 한 번 잘 못 뽑아 놓으면 후회막급이다.

사립학교법을 보라. 부도덕한 자들의 횡포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폭발적인 힘을 갖는지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세상을 바로 세우고 학교를 바로 세우는 일은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저희들끼리 다 해먹지 않도록 투표하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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