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에 접견대관 신헌과 일본 전권 대신 구로다의 2차 회담이 강화도 진무영(鎭撫營) 집사청(執事廳)에서 속개되었다.
구로다는 국서 문제를 여러 차례 따졌고, 신헌은 변명에 급급했다. 이때 동석한 1874년부터 조선 외교 사절로 동래부를 드나들던 모리야마 시게루가 나섰다. 모리야마는 협상 대표가 아닌데도 외교 관행을 무시하고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모리야마는 1868년부터 시작된 국서 문제에 대하여 1874년 가을의 관계 단절, 그리고 새로운 서계 문제까지 자초지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런데 신헌은 모리야마의 무례에 대하여 한마디 항의도 없이 ‘대략 알만합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회담은 이어졌다.
구로다 : 꼭 귀국 조정의 확실한 대답을 받아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직무인 만큼, 바라건대 조정에 전달하여 우리들이 돌아가서 보고할 말이 있게 하여준다면 아주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대관 : 조정에 알리기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큰 실수였다. 국서 문제는 어느 한쪽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양국 간의 문제인데도, 신헌이 조선의 잘못임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이 된 것이다.
국서 문제에 대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구로다는 조약 책자를 꺼내 보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구로다 : 신의와 친목을 강구하는 데서 특별히 상의해서 결정할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간단하게 기록한 13개 조항의 조약을 모름지기 상세히 열람하고 귀 대신이 직접 조정에 나가 임금을 뵙고 품처(稟處)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약 책자를 본 신헌은 ‘조약이란 것은 무슨 일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명색이 접견대관이라는 사람이 조약이란 단어도 모르고 회담하고 있다니 참 황당하다. 이게 당시 조선의 민낯이었다.
구로다 : 귀국 지방에 관(館)을 열어 함께 통상하자는 것입니다.
신헌 : 300년 동안 어느 때라도 통상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오늘 갑자기 이런 것을 가지고 따로 요청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바입니다.
구로다 : 지금 세계 각국이 다 통행하고 있는 일이고, 일본 또한 각국에 이미 관을 많이 열어놓고 있습니다.
신헌 : (전략) 귀국에는 별로 이로울 것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손해가 클 것입니다.
구로다 : 두 나라의 관계가 그간에 막혔던 것은 바로 조례(條例)가 분명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약을 체결해서 영원히 변치 않는 장정(章程)으로 삼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게 된다면 두 나라 사이에는 다시 교류가 끊어질 일은 없게 될 것이며 또 이것은 모두 없앨 수 없는 만국의 공법(公法)입니다.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신헌: 지금 관을 열어 통상하자는 이 같은 논의는 우리나라로서는 아직 있어 본 적이 없는 일이고, 우리 백성들은 아직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니, 이와같이 중대한 일을 어떻게 백성들의 의향을 들어보지 않고 승낙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우리 정부라 하더라도 즉시 자의로 승인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파견되어 나온 사신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구로다 : 귀 대신이 전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귀 대신과 토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무래도 늦어지게 될 것입니다. 귀국의 정권을 잡은 대신이 와서 만나본 이후에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자 신헌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나 역시 대관인데, 이미 대신을 만나고 있으면서 어째서 다시 다른 대신을 청하여 와서 만나자는 것입니까? 결코 들어줄 만한 일도, 시행할 만한 일도 아니니,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구로다 : 그러면 이 일을 누구와 의논하여 결정해야 하겠습니까?
대관 : 이 일은 조정에 보고한 다음에 가부를 회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로다 : 그렇다면 두 분이 직접 올라가서 임금을 뵙고 보고하고 토의해서 회답해주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신헌 : 이미 명령을 받고 내려왔으며 마음대로 자리를 떠나기도 어려우니 문건으로 교환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구로다 : 문건이 오가는 동안에 날짜가 걸릴 것인데, 우리들의 형편이 실로 난감하니 며칠 안으로 회답해줄 수는 없겠습니까?
신헌 : 문건이 오고 가고 의논도 하노라면 며칠 날짜가 걸릴 것입니다.
구로다 : 우리들이 명령을 받고 나라를 떠나온 지도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또 배 한 척이 오로지 우리가 복명(復命)할 것을 재촉하기 위하여 왔으니 한시가 급합니다. 만일 또다시 늦어진다면 어떻게 여기서 지체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속히 일을 도모하여 우리들을 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신헌 : 이런 취지로 문건을 보내겠습니다.
(고종실록 1876년 1월 20일)